역사에서 가정이란 부질없는 것이지만 때론 아쉬움과 여운이 남는 대목도 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기 초 '정치중립적인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여 부인 김건희씨의 각종 인사 개입과 비리 의혹을 끊임없이 감찰함으로써 제동을 걸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는 특별감찰관 임명은 커녕 김건희씨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무력화하며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다 결국 탄핵을 당해야 했다.
지난 3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 특별감찰관 임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제도적 감시가 이재명 정부에서 이뤄질까 하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특별감찰관 임명을 지시해 놨다. 불편하겠지만 저와 가족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이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등 고위 공직자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임명을 선제적으로 서두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특별감찰관은 2014년에 도입되었으나 박근혜 대통령 시절 초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2016년 사퇴한 뒤 8년 넘게 공석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김건희 비리 의혹 특검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가족과 친인척, 측근 등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비리의 싹을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볼 수 있다. "제 가족들, 가까운 사람들이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발언은 절박감이 묻어있다. 그건 대통령 본인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해도 가족이나 친인척, 측근들의 비리 때문에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대통령직을 마무리하는 뼈저린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 아들 비리 등으로 정권 말기에 큰 홍역을 치렀다. 두 전직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까지 발표하며 국민 앞에 머리를 숙여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특별감찰관 임명을 통해 윤석열 정권에 의해 덧씌워진 사법적 부정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제기된 비리 연루 의혹에 대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역대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특별감찰관 임명 추진은 "나는 떳떳하고, 앞으로 부패와 비리에 연루되지 않겠다"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앞으로 공직 사회의 부정부패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다.
한편으로 "권력은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견제받는 게 좋다"라는 이 대통령의 언급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부정부패, 권력남용 등에 대한 제도적 제어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의 표시로도 읽힌다. 이번 조치는 이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도덕적 신뢰 회복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전직 국회의원은 "특별감찰관 임명은 대통령의 정치적 신뢰 회복, 현 정부의 권력형 비리 예방, 그리고 도덕적 정당성 확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 효과가 지속되려면 이 대통령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별감찰관은 국회가 3인의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지명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국회에도 조속한 추천을 채근해야 한다. 야당에게도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과거 문재인 정권에서 이런 저런 정치적 이유로 국회가 추천을 미루면서 임명이 흐지부지된 사례가 있다.
기왕에 권력 감시와 견제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특별감찰관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특별감찰관은 강제조사 권한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 측근이나 가족 등 감찰 대상자에 대해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독립적, 실질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변호사는 "특별감찰관 제도가 성공하려면 대통령의 의지뿐 아니라 특별검찰관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실질적인 권한 보장, 야당의 추천을 진지하게 수용하는 자세 등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렇지 않으면 '보여주기식 쇼(show)'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장치들이 마련되지 않으면 특별감찰관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있다.
조선 중종 때 개혁적인 젊은 정치인 조광조는 오늘날의 특별감찰관과 비슷한 사헌부의 장관인 대사헌으로서 특권층(훈구파) 중심의 부정한 관직 장악과 인사 비리 등을 척결하려고 노력했다. 왕의 측근이나 궁중 인물과 연결된 권력층에 대해 감찰과 탄핵을 시도했다. 또한 중종의 총애를 받던 내시나 궁중 측근 세력의 부정청탁 인사나 뇌물 문제에 대해서도 "공직은 공정해야 한다"며 견제했다. 하지만 훈구파 권세가들의 반격을 받아 기묘사화(1519년)로 죽임을 당했다.
특별감찰관 임명은 이 대통령의 가족 친인척 측근 관리와 부정부패 척결 의지의 시험대나 다름없다. 이 대통령이 진정성을 갖고 국회를 재촉해 특별감찰관 임명을 서두르고, 독립적 제도적 보완조치를 조속히 취하길 바란다. 국회도 추천의뢰가 들어오면 당리당략을 떠나 빨리 적임자를 추천해야 한다.
취임 후 한 달 간 이 대통령이 보여준 국정 운영에 대해 일부 반대자들마저 오해했던 부분이 적지 않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그의 다짐대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혼신을 다할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 감시와 절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조짐이 나쁘지 않다.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경기 광명시장 [사진=양기대 전 의원]](https://image.inews24.com/v1/a473b71cc2af1f.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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