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중국이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 강화를 목표로 신약 임상 심사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한다. 미국이 자국 안보를 이유로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겨냥한 규제 법안을 재추진하자, 중국은 제약·바이오 산업의 '속도'를 앞세워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하고 있다. 2019.06.29 [사진=AP/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176ebb06a76d19.jpg)
23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총국(NMPA)이 최근 신약 임상 신청의 심사·승인 기간을 기존 60일에서 30일로 대폭 단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현재 베이징과 상하이 등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 중이며, 조건을 충족한 혁신 의약품에 대해 전국적으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다만 시행 시점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 조치는 신약 개발에서 속도가 결정적인 경쟁력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전략적 결정으로 풀이된다. 빠른 심사 절차를 통해 글로벌 제약사와의 초기 협력을 유도하고, 외부 자금 유치 과정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이다. 최근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중국의 글로벌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의견도 분분하지만, 심사 절차 간소화 조치로 이러한 불확실성을 상쇄하고 해외 파트너십 확대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이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겨냥해 재추진 중인 '생물보안법(Biosecure Act)'과도 맞물린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처음 발의돼, 9개월 만에 미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 표결에서 무산됐다. 규제대상 기업의 기준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단순 투자나 거래만으로도 제재가 가능하다는 점, 과도한 규제가 자국 산업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등이 부결의 배경이었다. 규제대상 지정 절차의 불투명성도 논란이 됐다.
그러나 미 하원은 최근 생물보안법안을 포함한 2026년도 국방수권법(NDAA)을 찬성 231표와 반대 196표로 통과시켰고, 상원에서도 현재 공식 심의가 진행 중이다. NDAA는 미국 국방 정책 전반을 다루는 연례 법안으로, 1961년 이래 한 번도 통과되지 않은 적이 없다. 상원이 생물보안법을 NDAA 최종안에 포함할 경우, 중국 바이오산업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바이오 성과는 성장세다. 중국 산업증권(Industrial Securities)에 따르면 중국 바이오 기업들은 올해 8월까지 총 83건의 라이선싱 계약을 체결해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했다. 거래 금액은 총 185억 달러(약 117조원) 규모로 집계됐으며, 이 역시 185% 급증했다.
그러나 업계는 양국 간의 패권 경쟁으로 바이오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생물보안법이 최종 입법되면, 중국 기업과 협력한 미국 제약사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글로벌 공급망이 위축되고 기술 협력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미국과 중국 기업 간 라이선싱 계약은 총 14건으로, 규모는 183억 달러(약 25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 체결된 2건과 비교하면 7배 증가한 수치다.
일례로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는 최근 중국 합작사 '중미 상하이 스퀴브 파마슈티컬스(SASS)'의 지분 60%를 매각하기로 했다. 겉으로는 특허 만료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현지 사업 환경 변화를 고려한 구조 조정 차원이라고 하지만, 업계는 이를 미중 의약품 시장 재편의 신호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은 원료의약품(API) 공급에서 세계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현재 생물보안법에는 API 관련 조항이 포함돼 있지 않지만, 제재가 강화되면 한국처럼 중국산 API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수급 불안, 원가 상승, 대체 조달처 확보에 따른 부담 증가 등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미중 간 바이오 기술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기술 자립도 제고와 전략적 파트너십 확보, 국제 표준과 규범의 중재자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며 "글로벌 공급망 변화와 외교 전략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신속한 모니터링과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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