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는 대중이 만들지만, 영웅은 하늘이 선택한다. 자격을 얻고 역량을 검증받은 영웅은 하늘의 도움을 받아 시련에서 벗어나고 과업을 완수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임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다. 하늘의 선택을 받지 않으면, 영웅이 아니라 스타로 격하되는 것이다. 영웅 스토리엔 반드시 하늘의 도움을 받는 서사가 필요하다.
하늘의 도움은 대개 난데없는 '행운'으로 여겨진다. 지난 2019년 온 세상을 얼어붙게 만든 코로나19는 지천명을 앞둔 에릭 위안에겐 천운이 됐다. 휴대폰으로도 할 수 있는 쉬운 영상회의서비스를 제공하는 '줌'(Zoom)을 창업하고 서서히 키워가던 터에 느닷없는 코로나19로 주가가 급등하면서 바로 이듬해 그의 자산 가치는 164억 달러(약 22조원)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는 창업 10년도 되지 않는 작은 제약회사에도 잭팟을 터뜨렸다. '모더나'(Moderna)는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코로나19 백신으로 단번에 빅파마(Big Pharma)가 됐다. 연 매출 100억 달러를 넘는 대형 제약회사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2009년 세상을 뒤숭숭하게 휘저은 신종플루도 새로운 신데렐라를 무대에 올렸다. '길리어드'(Gilead)는 '타미플루'(TamiFlu)로 명함을 내밀더니 5년 뒤 바로 10대 빅파마에 진입했다.
코로나19는 초대형 지진처럼 '사업 지형'을 크게 바꿔 버렸다. 인터넷으로 영화나 음악을 즐기게 하는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는 코로나19로 불쑥 떠올랐다. '우버'는 승차공유 사업이 반토막 났지만, 대신 음식을 배달하는 '우버이츠'를 새로운 수익모델로 발굴했다. 누군가의 행운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일 수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큰 덕을 봤던 '에어비앤비'는 코로나19로 사업의 80%가 날아갔다.
골리앗이 딴짓을 하는 것도 다윗에겐 하늘의 도움이다. 세계적으로 9000곳이 넘는 비디어테이프 매장을 가진 '블록버스터'는 온라인 시장의 성장에 맞서 되려 복합쇼핑 매장으로 확장하는 정책을 펼쳤다. 지나친 투자로 블록버스터가 2010년 공룡처럼 쓰러지고, 마침, 그즈음 스마트폰과 함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이 새싹처럼 돋아나면서 '넷플릭스'는 저절로 승자가 됐다.
'하늘의 도움'은 처음엔 깃털처럼 가벼워 보인다. 협심증 치료제를 개발하던 '힐엑스'의 창업자 데이비드 브라운은 임상시험에 참가한 광부의 민망한 답변으로 노다지를 발견했다. 부작용을 묻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 연구원에게 한 사람이 "발기"라고 속삭이자, 쭈뼛거리던 다른 광부들도 너도나도 입을 모았다. 광부와 연구원의 솔직한 답변과 보고가 없었다면,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의약품 '비아그라'(Viagra)는 나타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불운도 알고 보면 하늘의 뜻일까? 스티브 잡스만큼 '하늘'이라는 설정이 강하게 부각된 영웅도 없을 것이다. 1985년 '애플'에서 잡스를 해고한 하늘은 이듬해 그에게 '픽사'를 싸게 인수하는 기회를 줬다. 잡스는 픽사를 3D 컴퓨터 회사로 키우려 했지만, 하늘은 그가 공들인 컴퓨터는 족족 내팽개치고, 컴퓨터의 성능을 보여주려 만든 애니메이션을 연거푸 띄웠다.
'토이스토리' 덕에 잡스는 애플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가끔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하늘의 도움'일지도 모른다.
'하늘의 도움'은 정말 행운이나 우연의 결과인 걸까? 소명을 깨닫고 시련을 견디면서 굽히지 않고 나아가는 노력에 대한 보답인 걸까? '하늘'이라는 설정이 잦으면 스토리텔링이 허술해지기 마련이다.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큰 특징은 특출난 능력이 아니라 강렬한 열망이다. 목표를 향한 강렬한 열망에 대중이 먼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응답이 필연처럼 다가온다.
◇이정규 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은 IBM, 보안회사, 테크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재단, 감리법인에서 중간관리자, 임원,대표이사, 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지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벤처창업을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프로세스/프로젝트/IT컨설팅을 강의하고 있다. 또 프로보노 홈피에 지적 자산을 널어 놓는다.
◇허두영 라이방 대표는 전자신문, 서울경제, 소프트뱅크미디어, CNET, 동아사이언스 등등에서 기자와 PD로 일하며 테크가 '떼돈'으로 바뀌는 놀라운 프로세스들을 30년 넘게 지켜봤다. 첨단테크와 스타트업 관련 온갖 심사에 '깍두기'로 끼어든 경험을 무기로 뭐든 아는 체 하는 게 단점이다. 테크를 콘텐츠로 꾸며 미디어로 퍼뜨리는 비즈니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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