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생각이었다. 무너지는 국정의 정상화를 위해 '김건희 리스크'에 대해 고뇌 어린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이토록 강하게 주장하면 귀 기울여 들어볼만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들끓는 민심과 여론을 정면으로 배신한 윤 대통령은 결국 선처후공(先妻後公, 먼저 아내를 지키고 공적인 일은 나중에 한다는 뜻)을 택하며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국정이 표류하든 말든, 누가 뭐라 하든 말든 오로지 내 아내만 지키면 그만이라는 아집에 분노를 넘어 서글픔 마저 느껴진다. 이제 그 후폭풍의 책임은 오롯이 윤 대통령에게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2일 부산 범어사에서 '업보로 생각하고 돌을 맞고 가겠다'고 말했다. 국정을 포기하고 아내를 지키겠다는 이 다짐은 결국 국민을 무시한 독단적인 행보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지지율 20%까지 내몰린 사실상의 '식물 대통령'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처신이다.
윤 대통령의 독선과 무능, 김건희 여사의 국정 농단 의혹, 그리고 '명태균 게이트'로 인해 정국이 더욱 혼돈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심각한 의정 갈등과 연금개혁, 교육·노동 문제 등 국정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민생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국정동력 상실로 인해 현 정부는 국가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항간에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임명한 정무직 인사들을 제외하곤 모두 오불관언의 방관자이거나 몸을 사리느라 손을 놓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대통령실 분위기에 밝은 정치권 인사는 "명태균 게이트 이후 대통령실마저도 서로에 대한 불신 풍조가 만연하고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들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묘책이 보이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국정은 총체적 난국 상황이고, 민심은 정치를 외면하고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니 새로운 대안을 갈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식 있는 보수층뿐 아니라 마음 둘 곳 없는 중도층의 표심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벌써부터 '연착륙 정권교체'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수도권의 한 중견 건설회사 회장은 최근 만난 대구·경북 쪽 보수색 강한 건설사 회장들도 "윤 대통령은 이제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을 들으며 '이제 올 것이 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정권에 대한 실망감과 대안이 필요하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라고 해서 대안이 되겠는가? 이번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야권 역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단일화가 선거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변하지 않는다면 다음 대통령 선거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까? 윤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할 가능성도, 탄핵당할 가능성도 현재로선 희박하다. 국정을 돌보지 않는 대통령만큼이나 국민에게 더 큰 재앙이 있을까? 재앙의 장기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선택에 따른 '질서 있는 정권교체'의 길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목표없이 허둥대는 행정부를 견제하며 바른 방향으로 리드해 나가야 한다. 야당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반사이익’에만 매몰되지 말고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분발해야 한다.
역사의 주체인 우리 국민은 보수든 진보든 더 이상 지금의 혼란이 방치되길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민이 나서서 이념적 잣대나 정치적 편향을 덜어내고 냉철한 판단력과 합리적 선택을 통해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또한 이런 정치적 흐름을 선도할 새로운 리더십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뜻있는 정치지도자들도 좌면우고하지 말고 사즉생의 각오로 적극 나서야 한다.
'질서 있는 정권교체'냐 '성난 민심으로 끌어내리느냐' 두 갈래 기로에서 분노에 찬 민심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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