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8월 1일 목요일이다. 7월2일 동해항 출발 후 한 달이 지났다. 자동차 여행은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자동차 주행거리가 1만 4천킬로를 지났다. 타클라마칸 사막(남한 면적의 3.7배)은 매우 넓으므로 중간에 대협곡도 있고, 큰 호수도 있고, 타림강도 흐른다.
수십 킬로 길이의 쿠차 대협곡을 지나면 해발 1500미터 높이에 '보스텅 호수'가 푸른 물을 출렁이고 있다. 오늘 660킬로를 이동해야 하므로 '보스텅 호수'에 안 들리고 옆에서 스쳐 지나간다.
'타림강'은 곤륜산맥의 빙하수 녹은 물이 사막에서 발원하여 사막에서 사라진다. 눈이 많이 녹는 봄 여름은 수량이 많고, 가을 겨울은 수량이 거의 없다. 쿠차 가까이 가면서 당나라 시대 만든 군인 주둔지 유적이 곳곳에 나타난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습은 다양하다. 사막의 일부 구간은 사하(沙河), '모레가 강물처럼 흐르는 모레의 강'가 있다. 서기 400년경 13년에 걸쳐서 천축을 다녀와서 여행기 '불국기'를 남긴 '법현' 스님이 있다. '불국기'에 사하(沙河)와 '카라부란'(검은 모레 바람)에 대해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타클라마칸 사막 쿠차 인근 당나라 군대 주둔지 유적.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1ccee2cc1e391e.jpg)
"사하(沙河)에는 악귀와 열풍이 심하여 이를 만나면 모두 죽고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하늘에는 날아다니는 새도 없고, 땅에는 뛰어다니는 짐승도 없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망망하여 가야 할 길을 찾으려 해도 어디로 갈지를 알 수가 없다. 언제 이 길을 가다가 죽었는지 모르는 죽은 사람의 마른 해골만이 길을 알려주는 표지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마르코폴로(1254~1324)는 700년 전 원나라로 가기 위해 서역남로를 통과하였다. 그가 남긴 '동방견문록'에 "사막에는 악령의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흘려 길을 잃고 죽어간다." 기록하고 있다. 실크로드 상인, 구법승은 혹서의 한여름철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폭설이 쌓이고 길이 없어지는 파미르고원은 겨울철을 피해야 한다. '카라부란'이라는 무서운 모래폭풍을 조심해야 한다. 현재도 파미르고원의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눈이 내리는 겨울철 11월부터 3월까지 화물차 운행이 금지된다고 한다.
무서운 재난을 피하도록 기도를 위해서 실크로드 전 구간에 수많은 석굴을 만들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과 북의 폭은 400킬로가 넘는다. 현재 타클라마칸 사막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두 개 설치되어 있다. 중국인들은 이 길을 '금(金)'으로 만든 길이라고 부른다.
사막 종단 도로 건설에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는 의미이다. 또한 인력 손실도 컸다. 반정부 독립운동 시위를 한 위구르족 청년들이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 투입되어 사상자가 많았다고 한다. 중국은 1990년 중반, 3년 만에 종단 도로를 완성하여 사막의 자원개발에 사용하고 있다. 지하자원 개발뿐만 아니라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의 물을 이용하려 사막의 곳곳에 많은 농경지를 만들었다.
옛날 사람이 이 길을 간다면 상전벽해(桑田碧海) 변화된 풍경에 놀랄 것이다. 고속도로를 주변 사막의 농경지 주변에 방풍림으로 심은 백양나무와 포퓰러 나무가 자주 보인다. 농경지로 날아오는 모레를 막고, 바람을 막기 위해 심은 나무들이다. 백양나무는 오아시스 도시의 공원 조성과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져 있다.
과거 타림분지와 타클라마칸 사막 오아시스에 작은 부족 국가들이 많이 있었다. 부족 국가는 오아시스 크기에 따라 인구 숫자도 수백 명, 수천 명, 많아야 수만 명이다. 11세기 이후 기후변화로 300개 이상의 오아시스 촌락이 없어졌고, 지금도 오아시스가 계속 없어진다고 한다. 오아시스 부족은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섬처럼 고립된 촌락이다.
타림분지의 원주민은 기원전 4천 년 이전에 들어온 이란계 백인종들이다. 많은 약소 부족국은 주위 강대국의 세력다툼에 항상 희생을 강요당했다. 지배하는 종주국이 바뀔 때마다 언어가 바뀌고, 종족이 바뀌고, 종교도 바뀌어야 한다. 종주국과 조공국의 관계는 우리도 조선 시대에 겪었지만 타림분지는 그 정도가 다르다.
![타클라마칸 사막 쿠차 인근 당나라 군대 주둔지 유적.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5e2d7d6b5370c7.jpg)
타림분지는 동양과 서양의 중간 위치로서 기원전부터 동서양 교역로서 중요도가 높았다. 로마제국, 페르시아(이란), 인도(천축) 등 서방의 문화와 상품이 중국으로 들어오고, 중국의 비단 등이 로마제국, 페르시아 등으로 가는 길목이다. 중요한 국제 무역로를 차지하면 통행세 징수, 조공 수입 등 나라 재정에 도움이 된다.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고대 중국(한나라 당나라), 유목국가(흉노, 돌궐족, 티벳족, 몽골족) 등 주변 강대국의 싸움터이다. 고대 중국 왕조, 고대 유목민 제국은 한반도 등 동쪽 지역보다 서쪽 지역을 차지하는 것이 경제적, 안보적 가치가 훨씬 높다. 작은 오아시스 부족 국가들은 강대국의 간섭과 외침(外侵)에 조용할 날이 없는 곳이다. 아시아의 가장 동쪽 변방에 위치한 한반도는 서쪽보다 경제적 매력이 적은 덕분에 반만년 역사를 유지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서구학자 등이 신장지역, 타림분지, 타클라마칸 사막의 유적과 유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세기 말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하덴'의 탐험 이후부터이다. '스벤 하덴'은 1894년 인도에서 네팔을 넘어서 타클라마칸 사막의 사라진 고대 오아시스의 유물을 탐험했다. 서구 탐험가들은 신장지역이 발굴이 안 된 마지막 미지의 유물 보고로 생각하고 모여들었다.
19세기 유럽의 고고학자, 유물수집가들은 이집트 '왕가의 계곡' 발굴, 서아시아의 앗시리아 유적, 메소포타미아 유적 발굴, 성서에 나오는 지역 발굴 등 많은 유물을 찾았다. 더 이상 중동지역은 탐험 대상이 없어졌을 때 다음 목적지가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지역이다.
'영국의 스타인, 프랑스 펠리오, 일본의 오타니, 독일 르콕'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서구의 탐험가들에게 타클라마칸 사막의 사라진 오아시스 도시에 금과 보석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보석을 찾기 위한 탐험을 많이 했으나, 귀중한 보석은 찾지 못했다. 대신 3천년, 4천년 전 미이라, 고대 언어로 된 문서, 불교 유적 등을 발굴했다.
위구르족이 많이 사는 서쪽으로 갈수록 공안의 검문이 심해지고, 어떤 곳은 20분 이상 지체되기도 한다. 서쪽 도시인 '투루판, 쿠차, 어커수, 카슈가르' 등 파미르고원으로 가는 도시들은 위구르족이 70% 이상 사는 지역이다. 간판, 도로표시 등도 중국어와 위구르어 두 언어를 병기하고 있다. 신장지역의 소수인종 숫자는 16개이고, 중국 전체로는 56개 소수인종이 산다. 중국의 소수인종 중에서 위구르족의 독립 열기가 가장 높다.
촘촘이 설치된 고속도로 톨게이트 직원들도 처음 보는 외국에서 온 우리 차량에 대해 번호판 사진을 찍고, 상급자에 통과 여부를 보고하고 승인을 받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위구르족은 이슬람교 신자가 절대다수이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과격파와 탈레반이 신장지역 위구르족에 대한 독립운동 지원과 무기 공급지라고 한다.
이슬람교 사원인 모스크가 뒷골목에 가끔 보인다. 이곳은 하루 5번 예배를 알리는 스피커 소리가 금지되어 있어서 아랍 등 다른 지역의 이슬람 사원과 다르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것도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불편하다.
![타클라마칸 사막 쿠차 인근 당나라 군대 주둔지 유적.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1f33ef8bae7d52.jpg)
위구르족이 많이 사는 지역의 '주유소'는 군 막사처럼 철책으로 튼튼하게 보호하고 있다. 주유소는 군대나 교도소처럼 높은 쇠창살로 담을 쳐놓고, 입구와 출구의 문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위구르족 테러범이 주유소를 점령하여 방화 등 큰 사건을 저지르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택이 많은 도심의 주유소가 폭발하면 큰 피해가 날 것이다. 시내에 있는 주유소는 기름 넣는 데 여권까지 검사한다. 우리는 시내 대신 검사가 덜 심한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로 했다. 주유소 입구에서 운전자만 남고, 다른 탑승객은 내려서 약 50미터 떨어져 있는 출구로 걸어가야 한다. 운전자가 기름을 넣고 출구로 나오면 가족들은 기다렸다가 다시 차를 탄다.
7월, 8월 사막의 땡볕 아래 위구르족 등 현지인 여자와 아이들이 주유소 밖 담장을 따라서 걸어가는 모습이 측은하다. 다행스럽게도 디젤 기름을 넣는 화물차와 SUV 차량은 예외적으로 탑승객이 안 내려도 된다. 우리 차는 디젤 기름을 넣는 SUV 차량이라 예외 적용 대상이라 차에서 안 내리고 주유소 안까지 들어갈 수 있다. 주유소 내부 담벽에 몽둥이, 삽, 방망이 등 진압용 장비가 걸려있어 살벌한 분위기이다.
위구르족에 대한 강력한 테러 예방 대책이다. 주민들 불편함은 무시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체념하고 잘 순종하는 것 같다. 신장지역에 사는 위구르족 인구수는 약 12백 만명이다. 과거는 신장지역의 전체 16개 민족 중 위구르족이 45%를 점유하는 다수 인종이었다. 현재는 한족이 대거 신장지역 이동으로 한족이 가장 많은 거주자일 것으로 추정한다.
유적지 매표소에서 티켓을 살 때와 입장할 때 여권을 각각 확인하고 전산 입력한다. 중국인들도 신분증을 확인하고 역시 전산 입력한다. 지명 수배자나 범죄인은 숨을 곳이 없어 보인다. 개인의 사생활 보장, 이동 동선, 방문 장소는 정부가 모두 파악하고 있다. AI 시대의 빅데이터 수집, 활용에 크게 도움이 되겠지만, 사생활과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는 우리는 매우 불쾌하다. 돈황, 서안 등 유네스코 유적에 서구인, 일본 등 선진국 관광객이 안 오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타클라마칸 사막 쿠차 인근 당나라 군대 주둔지 유적.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a9b5012efaf529.jpg)
우리는 하루 종일 660킬로 먼 거리를 달려서 오후 8시경 '쿠차' 숙소에 도착했다. 서쪽이라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다. '신장 타임' 때문에 8월1일 현재 일몰은 밤 9시 50분이고, 일출은 7시 50분이다. 낮은 40도가 훨씬 넘지만, 해가 지면 선선해서 날씨가 쾌적하다.
오아시스 도시 '쿠차' 인구는 50만 명이고, 위구르족이 다수이다. 쿠차는 과거 '구자국'이라고 불렀는데 서역 36국 중에서 구자국이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매우 환하다. 식사 후 근처 노천까페에서 맥주와 양꼬치(샤슬릭 구이)를 먹으며, 여행의 피로를 푼다. 이슬람교 지역이라 돼지고기는 안 팔지만, 중국의 이슬람 지역은 술 판매는 자유롭다.
중국화된 이슬람 지역이다. 시내는 고층아파트가 매우 많고, 호텔은 넓고 깨끗하다. 쿠차는 당나라 시대 '안서도호부'를 설치했던 실크로드 전략적 요충지이다. 한자에서 글자 안(安)자는 '평화'를 의미한다. 당나라는 오아시스 국가의 영토를 빼앗고, 서쪽의 평화를 지킨다는 뜻으로 '안서(安西)도호부'를 설치했다.
당나라는 서역의 '투루판, 쿠차, 호탄, 카슈가르'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하고 군사를 주둔시켰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평양에 '안동(安東)도호부'를 설치한 적이 있다. 우리는 내일 오전 쿠차를 출발 '키질석굴', 기원전 한나라 시대 만든 '봉화대'를 봐야 한다.
![타클라마칸 사막 쿠차 인근 당나라 군대 주둔지 유적.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9214052e0a4af4.jpg)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법무법인 광장 고문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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