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공포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뇌의 비밀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 자폐 환자의 불안과 공포를 완화할 수 있는 실마리가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 김은준 단장(KAIST 생명과학과 석좌교수) 연구팀은 자폐 환자에게서 발견된 유전자 변이를 가진 생쥐 실험을 통해 기저편도체(감정 조절과 공포 기억 소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부위) 흥분성 신경세포의 활성 조절이 공포 기억 소거와 장기적 공포 반응 억제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번 연구는 자폐 환자에게 동반되는 불안과 공포 장애의 작동원리를 세포, 시냅스, 뇌 회로 수준에서 최초로 밝힌 성과여서 눈길을 끈다.
![뇌는 왜 공포 기억을 지우지 못할까. IBS 연구팀이 기저편도체 신경세포 활성화에서 해법을 찾아냈다. [사진=IBS]](https://image.inews24.com/v1/08832cf92dddf8.jpg)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는 발달 장애의 하나로 사회성 저하와 의사소통의 어려움, 반복적 행동이 특징이다. 환자들은 이러한 주된 증상 외에도 다양한 동반 질환을 겪는다. 불안과 공포 장애는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일부 환자는 작은 환경 변화나 일상적 스트레스에도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외상후스트레스(PTSD)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구체적 기전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자폐와 PTSD 증상의 기전을 이해하기 위해 뇌 발달과 시냅스 가소성을 조절하는 핵심 인자인 NMDA 수용체(NMDAR)에 주목했다. 시냅스는 신경세포 간의 정보가 전달되는 구조적 장소이다. 그 활성정도에 따라 구조와 기능이 변화할 수 있다.
이 수용체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GluN2B 단백질은 발달 초기에 뇌 회로의 형성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GluN2B를 만드는 설계도 역할을 하는 GRIN2B 유전자의 변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비롯해 지적 장애, 발달 지연 등 다양한 뇌⸱정신질환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실제 자폐 환자에게서 발견된 GRIN2B 유전자의 C456Y 변이를 가진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위협적 상황을 겪은 뒤 공포 기억을 쉽게 잊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도 과도한 공포와 불안 반응을 보이는 등 PTSD와 비슷한 증상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추가 연구에서는 변이 생쥐의 기저편도체가 트라우마 이후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어진 전기생리학 분석에서는 이 부위의 흥분성 신경세포가 장기간 억제돼 있음이 확인됐다.
흥미롭게도 변이 생쥐가 공포 기억을 테스트하는 동안 화학유전학적 기법으로 기저편도체의 흥분성 신경세포를 인위적으로 활성화시키자 억제돼 있던 신경 전달과 흥분성이 정상화됐다.
이와 함께 공포 기억은 정상 수준으로 소거되고 장기적 공포 반응도 완화됐다. 이러한 결과는 기저편도체의 비활성화가 공포 기억의 소거 장애와 장기적 공포 반응의 핵심 원인임을 시사한다.
연구를 이끈 김은준 단장은 “이번 연구는 자폐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PTSD 유사 증상의 원인이 기저편도체에 있는 흥분성 신경세포의 장기 억제에 있음을 세포, 시냅스, 뇌 회로 수준에서 최초로 규명한 성과”라며 “이는 기저편도체의 활성이 앞으로 자폐 환자의 PTSD 관련 치료 전략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논문명: Grin2b-mutant mice exhibit heightened remote fear via suppressed extinction and chronic amygdalar synaptic and neuronal dysfunction)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9월 17일(현지시간) 온라인으로 실렸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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