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윤소진 기자] 네이버클라우드 '각 세종'과 KT클라우드 '가산AI데이터센터'를 일주일 간격으로 방문했다. 빽빽하게 들어찬 GPU 서버와 정교한 냉각 설비는 한국의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보여줬다. 하지만 현장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기술은 준비됐는데 제도와 환경이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AI 확산 속도는 이미 폭발적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을 ‘아시아 AI 허브’로 점찍었다. AWS는 SK그룹과 손잡고 울산에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으며, 오픈AI도 삼성전자 등과 협력해 한국 내 AI 거점 구축에 나섰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26만 장의 GPU 공급을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AI 인프라를 받아들일 ‘준비’가 우리에게 되어 있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데이터센터 구축에 병목이 발생하면서 벌써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신규 데이터센터의 3분의 1 가량은 인허가 이후 1년 넘게 착공하지 못한 채 멈춰있다. 간신히 착공에 이르러도 6개월 이상 지연된 절차에 손해가 적지 않다.
또 다른 걸림돌은 데이터센터에 대한 편견이다. 전자파, 열섬, 정전 우려 등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공포와 지역이기주의(NIMBY)가 AI 인프라 시대의 가장 큰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당초 용인시 기흥구에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했으나 주민 반발로 무산됐고, 이후 대체 부지를 세종으로 옮겨 현재의 '각 세종'을 구축했다.
데이터센터 한 곳을 짓기 위해선 전력 인허가만 평균 2년 가까이 걸린다. 데이터센터의 90% 가량이 몰려있는 수도권은 이미 포화 상태다. 정부는 분산에너지법을 통해 데이터센터 지방 이전을 유도하고 있지만, 전문 인력과 생활 인프라 부족이 발목을 잡는다. 법령 해석이 부처마다 달라 행정 절차가 중복되는 것도 문제다.
현장의 목소리는 명확했다. 최지웅 KT클라우드 대표는 "규제 통과에 1년 6개월이 걸렸다. 도심권은 전자파 우려 등으로 시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노상민 네이버클라우드 데이터센터 통합센터장은 "조만간 데이터센터 '보릿고개'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도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데이터센터 특구 지정, 타임아웃제 도입, 전문 인력 양성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속도가 문제다. 기업들은 인허가를 1년 반씩이나 기다릴 수 없고, 주민 설득에만 매달릴 수도 없다. 그 사이 미국은 초대형 데이터센터에 수십조 원을 쏟고, 일본은 전력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지금 국회에는 데이터센터를 공공기반시설로 지정하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AI 데이터센터를 국가 핵심 인프라로 보호하는 법적 근거도 논의되고 있다. GPU 확보 속도만큼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한 시점이다.
데이터센터는 단순히 ‘전기 많이 쓰는 건물’이 아니다. AI 시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인식 개선, 규제 완화가 속도를 내지 못한다면 한국의 AI는 남의 땅에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기술이 제도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윤소진 기자(soji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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