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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정치검사에 대한 '항변'이 왜 '항명'인가


검찰의 마지막 가는 길 참담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적 사태…검사마저 입다물어야 하나"
"대장동 일당, 옥중 부동산 재벌로…이게 공정이고 정의인가"
"검사 이의제기권은 검찰동일체 혁파의 산물…정치적 압박 안돼"

퇴임식을 마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2025.11.14 [사진=연합뉴스]
퇴임식을 마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2025.11.14 [사진=연합뉴스]

[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검찰의 마지막 가는 길이 참담하다. 수장은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1심 판결에 '묻지마 항소 포기'를 질러놓고 "나는 야인"이라며 나갔고, 여당은 항소 포기 이유를 그에게 물었다는 이유로 검사장들의 징계를 추진 중이다. 일부 의원들은 그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법무부는 대검찰청 수뇌부에서 "항소 반대" 의견을 낸 참모를 전국 최대 검찰청 수장에 임명했다. 검찰 내부는 집단 무기력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대장동 개발 사업을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공익사업"이라고 했다. 그 취지와 의지에는 의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검찰이 추징 대상으로 특정한 대장동 일당의 범죄 수익만 최소 7524억원. 1심이 인정한 금액은 473억원이다. 나머지 7051억원은 어디로 갔나. 그런데도 법무부장관은 "검찰이 초래한 수많은 사건의 일부"라고 한다. 역대 이런 사건이 있었나.

진영 논리에 오염된 수사는 빼고 판결만 놓고 보자. 대장동 일당이 성남도시개발공사와 성남시 실세들에게 뇌물을 먹이고 사업을 주물러 수천억원을 가져갔다. 성남시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이다. 검사가 수사해 기소하고 판결을 받았다. 결과는 유죄다. 다만 법원은 검찰이 적용한 특경가법상 배임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범행으로 인한 재산상 이익의 구체적 가액을 산정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법원은 배임 성립 시점, 구조 설계 방식 등 복합적 법리 판단이 얽혀 구체적 가액을 산정할 수 없다고 했지, 범죄수익이 없다고는 안 했다. 대신 형법상 배임죄를 적용했다. 이게 핵심이다. 검찰이 항소심에서 치열하게 다퉈야 할 부분이었다. 검찰의 항소는 예정된 일이었다.

정성호 장관은 지난 10일 도어스테핑에서 20분 넘게 이번 사태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수사와 법원의 재판을 "성공한 수사 또 성공한 재판"이라고 했다. 여기서부터 꼬였다. 민주당도 과거 항소 포기가 아니라 '항소 자제'라고 물을 탔다. '윤석열 검찰이 정적 이재명을 제거하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고 증인들을 회유해 기소했다'는 말은 누가 했나.

퇴임식을 마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2025.11.14 [사진=연합뉴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지난 10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며 물을 마시고 있다. 2025.11.10 [사진=연합뉴스]

정 장관은 대장동 일당이 통상적 항소 기준인 양형 수준을 초과한 형을 선고받았으니 합당하다고도 했다. 김만배는 검찰이 징역 12년을 구형했지만 8년을 선고받았다. 남욱은 징역 7년 구형에 4년 선고다. 정영학은 징역 10년 구형량의 절반인 징역 5년형이 선고됐다. 정씨는 이 판을 짠 사람이다. 정 장관이 '초과한 형'을 받았다는 사람은 유동규와 정민용이다. 검찰이 각각 징역 7년과 5년씩 구형한 것을, 법원은 거기에 1년씩 가중했을 뿐이다. 이게 항소를 포기할 정도로 합당한 결과인가.

더 큰 문제는 범죄수익금이다. 김씨는 6112억원 중 428억원 추징, 남씨와 정씨에 대한 추징금은 '0'원이다. 구속 수감 중인 남씨는 검찰이 동결한 자신의 부동산을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신속히 풀지 않으면 국가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속수무책이다.

피해보전에 대한 법무부와 여당의 입장은 더 이해할 수 없다. 정 장관은 "이미 이 사건의 피해자라고 규정돼 있는 성남도시(개발)공사에서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 7000억원을 갖다가 받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게 전혀 사실과 다른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재판부는 판결문에 "공사가 대장동 관련 형사소송 결과가 모두 나온 뒤에 민사소송 절차를 통해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심히 곤란하게 되었다. 뒤늦게나마 피해 회복 과정에 '국가'가 개입해 범죄피해재산을 추징한 다음 이를 다시 피해자에게 환부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신속한 피해 회복을 도모할 필요성이 크다"고 이례적으로 적시했다. 누구 말이 맞나. 여기에서의 '국가'는 누구인가.

퇴임식을 마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2025.11.14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5.11.21 [사진=연합뉴스]

검찰청은 10개월 후 폐지된다. '인사'라는 칼자루를 쥐고 입맛대로 검찰을 휘둘러 온 정권과 그에 부역한 정치검사들이 여기까지 몰고 왔다. 80년 가까이 다듬고 키워 온 국가시스템이 아니고 운용자들이 문제였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그런데 운용자들은 그대로 있고 국가시스템을 없앴다.

노만석 전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자신이 지휘한 '항소 포기'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자 이리저리 말을 바꿨다. 급기야 "검찰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나 용산, 법무부와의 관계를 따라야 했다"고 했다. "전 정권이 기소해놨던 게 전부 다 현 정권 문제가 돼버리고, 현 검찰청에서는 '저쪽'에서 요구사항을 받아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저쪽에서 지우려고 하고 우리(검찰)는 지울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언제부터 검찰이 대통령과 법무부 관계를 살펴 항소 여부를 결정했나. 이러니 후배 검사들이 '정치검사'라고 하는 것이다.

검찰청법 제7조 2항은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제1항의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하여 이견이 있을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1949년 제정 이래 55년 동안 검찰을 지배하던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2004년에야 법적으로 혁파했다. 그 산물이 검찰청법 제7조 2항이다. 정권의 외압과 정치검사들의 압박에 일선 검사들이 헌법과 법 안에서 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지방의 말석 평검사부터 검사장까지 전국 검사들이 노 전 대행에게 항소 포기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 것은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여당은 정치검사들의 "집단 항명"이라면서 징계하고 강등하겠다고 을러대고 있다. 전원 일치된 한 목소리로 정치검사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고 설명을 요구한 것을 '집단 항명'이라는 것인가.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명이라는 것인가. 누구의 어느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것인가. 성남시민에게 돌아가야 할 7000억원을 김만배·남욱·정영학 등 대장동 일당에게 몰아 준 것이 정의고, 공정인가. 수천억대 재벌이 까짓거 징역 8년이 대수랴. 검찰과 사법시스템이 이 지경인데 검사들조차 입을 다물고 있으면 누가 이의를 제기하나.

퇴임식을 마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2025.11.14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가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대장동 항소포기 외압 진상규명 국정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11.17 [사진=연합뉴스]

이번 사태를 두고 "어차피 해체될 검찰인데, 대통령의 인사권이 두렵다고 사상 최악의 검찰 죽이기 공작에 침묵하고 굴복할 것인가"라는 국민의힘 원내대표 발언도 야당이 할 말이 아니다. '대장동 항소 포기' 호재에도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니까 검찰을 도발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앞서 당대표는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을 비판하면서 "사법부는 재판의 독립을 해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모든 법관이 분연히 일어섰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 견제는 야당 몫이다. 이런식의 유도는 사태만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정치검사가 정권에 부역했지만 그럼에도 우리 국가와 사법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고 발전해 온 것은, 권력의 바람이 불 때마다 대들보는 휘청일 지언정 대다수의 검사들이 한눈 안 팔고 각자 나사못처럼 묵묵히 본분을 다했기 때문이다.

검찰청 폐지를 앞둔 상황에서 검사들이 노 전 대행에게 항소 포기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한 것은 항명이 아니다. '나사못 검사'들이 "도대체 왜 그랬느냐"고 정치검사에게 묻는 마지막 항변으로 봐야 한다. 이 사태는 검찰만의 일이 아니다. 국가적 차원의 문제다. 국민도 다 안다.

/최기철 기자(lawc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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