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라창현 기자]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와 헌정사 두 번째 대통령 파면이라는 격변을 지나면서 한국 정치지형은 또 한 번 대전환을 맞았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20대 대선 패배 이후 3년 만에 조기 대선을 이끌어냈고, '내란 청산'과 '민생 회복'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제4기 민주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기세를 몰아 민주당 안팎에서는 누가 '포스트 이재명'이 될 것인가라는 얘기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22대 총선에서 175석을 확보해 명실상부한 범야권의 사령탑이 된 민주당은 '단일대오' 기조를 앞세워 정부·여당을 압박하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 취임과 함께 국정을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수평적으로 이끌어가는 '이원구조'로 재편되면서 양측의 역할·우선순위가 미세하게 어긋나는, 이른바 '엇박자' 장면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2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수락연설을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cc959d3b6b77c1.jpg)
'당 대표' 된 '당대포'…강성당원들, '對野 공세' 힘 실어
야당 시절 민주당은 명확한 목표와 단일한 지휘 체제를 갖고 있었다. 거대 의석을 기반으로 국회 권력을 활용해 윤석열 정부의 행보를 집중 견제했다. 압도적 총선 승리를 등에 업고 원내 제1당이 국회의장, 제2당이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아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한 관례를 깨고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 모두를 획득해 여느 때보다 속도감 있는 입법과 의사결정을 통해 강력한 야당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8월 친명 색채가 더 짙어진 민주당 지도부는 대정부 공세에 더욱 고삐를 당겼다. 이재명 당시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85.4%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을 얻었으며, 최고위원 역시 김민석·전현희·한준호·김병주 등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이 포진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원내 전략을 담당하는 원내대표 역시 친명계 박찬대 의원이 맡고 있던 터라 '이재명의 민주당'은 동일체 수준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집권 이후, 당 대표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의사결정 체계가 수평적인 당정 관계로 바뀌면서 성격이 달라졌다. 지난 6월 초, 21대 대선 승리로 집권당이 된 민주당은 두 달 후 전임 대표의 잔여임기 1년을 채울 인물로 4선의 정청래 의원을 택했다.
그동안 민주·진보 진영의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도맡아 '당대포'라고 불린 정 의원이 대표에 오른 건 대야 공세에 고삐를 죄라는 강성당원의 강력한 지지에 기반한 것이다. 그 역시 수락연설에서 '3대(검찰·언론·사법) 개혁 입법 완수'와 '내란세력 처벌·단죄'를 선언했다.
당 역시 대표의 스타일에 맞게 '전투형' 체제로 변모했다. 취임 직후 개혁 입법 속도전을 추진한 정 대표는 당을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신속 대응체제를 마련했다. 예상치 못하게 법사위원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국회의장급인 6선의 추미애 의원을 파격 임명하며 대야 공세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그러면서 차츰 당정관계는 차츰 불협화음이 나기 시작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2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수락연설을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c4873a50c7e620.jpg)
산토끼 쫓는 대통령, 집토끼 쫓는 여당 대표
야당 시절과 달리 집권세력의 권력 구조는 '윤석열 정권'과 확연히 달라졌다. 그 핵심은 국정(대통령실)과 입법(민주당)을 각각 도맡는 '수평적 당정관계'로 변했다는 데 있다. 단일 의사결정체제가 아닌 '복합 의사결정체제'가 된 것이다.
대통령실은 집권 초기 국정안정과 '경제·민생회복·외교' 성과 등을 최우선에 두고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관리형 국정운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국민 전체를 대표하게 된 만큼 그에 맞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인데, 이 대통령 역시 취임사에서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길에서 "저는 언제나 시작할 때보다 마칠 때 지지율이 높았다"면서 "마칠 때 (지지율이) 더 높아졌으면 한다"고 최종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대통령 임기 동안 국정을 안정적으로 수행해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퇴장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집권당은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소위 '내란' 정국 이후 집권하게 되면서 당 지지층이 부여한 '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과제를 최우선 순위를 올렸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저의 당대표 당선은 당원주권시대를 열망하는 민주당의 주인이신 당원들의 승리"라면서 "국민과 당원의 뜻을 하늘처럼 섬기며, 민주당 당대표로서 신명을 바치겠다"고 했다.
두 권력의 지향성은 같지만 디테일 부분이 미세하게 어긋나면서 소위 '엇박자'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졸속을 피하라"고 당부한 '검찰개혁'을 당은 속도전으로 밀어붙였고, 현직 대통령의 형사재판을 중지시키는 재판중지법을 당이 추진하려고 하자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라"며 경고했다.
한 당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 입장에선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국정동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중도층과 국민의 지지를 확보해 국정 동력을 이끌어 가는 게 중요하다"면서 "반면, 정 대표는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등 연이은 공직·당직 선거에서 승리해 본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야 하기 때문에 당 지지층의 선택을 받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최근 '1인1표' 당헌·당규 개정도 정 대표의 당내 보폭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개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며 "이 대통령과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산토끼 전략'이 중요하지만 정 대표로서는 핵심 지지층인 '집토끼 전략'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엇박자가 나는 것"이라고 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2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수락연설을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7a6ec54cd01077.jpg)
'정청래 색깔' 아직...'당대표 연임' 성공 후 본격화
정치권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와 전당대회를 거치면 당정 간 긴장감이 지금보다 더 선명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의 구도는 이 대통령이 '국정 안정'을 제1목표로 두지만 정 대표는 당 지지층 결집으로 정치적 성장에 집중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통화에서 "현재 나타나는 당정 간 불협화음은 전략적 차원에서 '굿캅·베드캅 전략'으로, 진영 내부의 갈등이 전면적으로 불거지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대표는 2단계 전략을 가져갈 것이다. 지방선거까지는 개혁드라이브를 진행하고 이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연임에 성공하는 게 1차 목표이고, 이후 정청래의 색깔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며 "차기 권력은 늘 차별화를 통해 나왔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 역시 "대통령실과 당은 이른바 '협력적 긴장 관계'에 있다"며 "윤석열 정부 당시 당이 끌려다닌 것을 고려하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이지만, 정 대표의 정치적 의지가 강해서 일반 국민 눈높이에서는 '오버페이스'를 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1년짜리 임기 당대표이기 때문에 연임을 한 번 더 시도할 것이고, 이후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고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면서 "연임에 성공한다면 정부가 잘하는 것에 대해선 박수를 보내지만, 잘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강하게 질책하는 등 대통령실과의 마찰이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당원주권주의를 표방하며 추진 중인 '1인1표' 개정과 관련해선 "내년 당대표 경선 때 압승하기 위한 포석"이라며 "경쟁자들을 향해 '내가 강성 당원들을 업고 있는데 나올 생각도 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읽힌다"고 덧붙였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2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수락연설을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91733a41bf5c94.jpg)
최근 정치권에서는 김민석 국무총리의 '차기 당권 도전설'도 제기되고 있다. 국무총리 비서실이 차기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 김 총리를 제외해달라는 요청한 게 알려지고, 또 김 총리도 유튜브 등에 출연해 차기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면서다.
그러면서 정 대표의 연임 가도에 그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경쟁자들이 당연히 나타나고 그중에서 현재 가장 큰 경쟁자가 김 총리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며 "상황이 바뀔 순 있지만 당연히 정 대표가 연임으로 가려면 가장 큰 상수인 김 총리를 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재 논란이 된 '1인1표'에 대해선 "당원들은 국면에 맞는 투표를 하므로 (투표 결과에) 영향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다지 대세에 영향을 준다고 보진 않는다"고 진단했다.
/라창현 기자(r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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