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트럼프 정부의 동물 연구 축소 일환으로 모든 원숭이 임상을 연내 종료한다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다. 이에 AI 등 대체 임상 기술이 급격히 발전한 배경 속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https://image.inews24.com/v1/764536ecdb4e50.jpg)
3일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CDC는 연말까지 원숭이와 관련된 모든 임상 연구를 단계적으로 종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샘 베이다(Sam Beyda) 신임 CDC 이니셔티브 책임자가 이를 연구진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기(Make America Healthy Again)' 정책 기조에 따라 동물 연구 축소 이니셔티브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CDC는 그동안 HIV 예방 연구를 위해 원숭이를 활용해왔는데, 이번 조치로 약 200마리의 원숭이를 포함한 연구들이 중단될 전망이다.
갑작스러운 원숭이 연구 중단 소식에 CDC 일부는 HIV 등 감염병 분야 연구가 큰 손실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재 CDC가 사육 중인 원숭이들은 HIV(에이즈) 개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붉은털 원숭이와 돼지꼬리 원숭이 혼종 개체는 HIV 감염률을 99% 낮출 수 있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예방약 'PrEP' 개발의 기반이 됐고, 백일해·결핵 등 전염병 연구에도 활용돼 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HIV 감염자는 408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아프리카가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연구 중단이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데보라 풀러(Deborah Fuller) 워싱턴 국립영장류연구센터(WNPRC) 박사는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원숭이 연구는 성병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마이크로비지드(microbicides)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왔다"며 "다른 동물 모델로는 알기 어려운 점을 원숭이를 통해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현재 CDC 내부에서는 연구 중단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보건복지부(HHS)는 CDC가 사육 중인 원숭이들을 인디애나주 영장류 보호소로 이동시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SS는 CDC의 상부 기관이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CDC 개편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연방정부의 규제와 지출을 줄이기 위해 정부효율부(DOGE)를 신설했으며, 베이다 책임자는 DOGE 출신이다. 올해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식품의약국(FDA), 환경보호청(EPA), 국립보건원(NIH) 등 주요 연구기관 수장들은 잇따라 동물 실험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오가노이드(인공 장기)와 AI 기반 임상 수단의 급격한 발전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 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Fortune Business Insight)에 따르면, 글로벌 AI 임상 시험 시장 규모는 2023년 27억6000만 달러(약 4조450억원)에서 지난해 38억 달러(약 5조5692억원)로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2032년에는 548억 달러(약 78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AI 기술을 임상에 활용하면 환자 매칭 속도가 최대 40% 빨라지고, 비용은 수년에 걸쳐 수십억 달러가 절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원숭이 실험 중단 조치를 임상 시험 규칙 재정립으로 보고 있다. 정이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 동물 실험은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고, 인체에 적용 가능한 치료 효과와 독성을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조치는 동물실험 폐지 필요성에 더해, AI 모델과 오가노이드 등 대체 실험 기술이 실제 활용 가능한 수준으로 성숙했기에 가능했던 결정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AI 기반 신약개발 기업들은 후보물질 발굴 및 독성 예측 분야에서 실질적 성과를 입증해왔으며, 이번 정책을 계기로 전임상 단계에서 AI 활용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미국의 조치로 국내 신약개발 기업들도 전임상 단계에서 AI를 포함한 대체 실험 기술 도입을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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