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황세웅·권서아 기자] "아침에 낸 견적이 오후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몇 분 차이로 가격이 달라집니다."
지난 20일 오후 5시쯤 찾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 선인상가. 이곳은 한때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조립 PC의 성지'와도 같았다. 하지만 평일인데도 조립 PC 매장 골목은 한가한 편이었다. 문을 닫은 점포도 띄엄띄엄 보였고, 불이 켜진 곳에서도 매장을 방문한 손님은 많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요즘은 오후 5시나 5시 반이면 사실상 마감"이라며 "아침에도 보통 10시쯤 돼야 업무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용산 전자상가 노트북 매장에 진열된 제품들. [사진=권서아 기자]](https://image.inews24.com/v1/165fba7c3c8e36.jpg)
![용산 전자상가 노트북 매장에 진열된 제품들. [사진=권서아 기자]](https://image.inews24.com/v1/23e81aefcde162.jpg)
그런데 매장은 한가했지만 여기서 사고팔리는 가격은 들끓고 있었다. 찾는 소비자 발길이 뜸한데도 팔리는 물건의 가격은 천장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인공지능 열풍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곳 상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해 10월 APEC 전후로 DDR5 등 주요 메모리 가격이 가파르게 뛰면서, PC는 물론 노트북·스마트폰까지 줄줄이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메모리가 기업 서버용으로 먼저 들어가면서 일반 소비자 시장의 공급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용산 전자상가 노트북 매장에 진열된 제품들. [사진=권서아 기자]](https://image.inews24.com/v1/03fcda7088b3a7.jpg)
"가격표는 무용지물"… DDR5 일주일 만에 20만→41만원
현장에서 체감되는 가격 불안은 이미 위협적인 수준이었다. DDR5 16GB 가격을 묻자, 이 상인은 "지금 나올 수 있는 건 34만원"이라고 답했다가 곧바로 "재고가 없다. 딱 한 개만 가능하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요즘은 재고가 있어도 한두 개 수준"이라며 "가격표를 붙여놔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가격은 하루 단위가 아니라 분 단위로 바뀌는 상황이다. 그는 "단가를 보고 온 손님이 그 가격을 들고 다른 데 가서 제품을 맞추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며 "그 가격을 뽑자마자 바로 주문하지 않으면 금방 달라진다"고 말했다.
또 "오늘 아침에 낸 견적이 저녁에도 유지되느냐"는 질문에 "뛰는 것도 그렇고, 그대로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 대답했다.
이 상인은 "DDR5 16GB 대리점가는 41만7000원까지 올라왔다"며 "지난주까지만 해도 20만원대 중반이었는데, 며칠 새 두 배 가까이 뛰었다"고 전했다. 32GB·64GB 제품은 "아예 물건이 없다"고 언급했다. 96GB 메모리는 "예전엔 60만원대였는데 지금은 150만~180만원을 불러도 구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AI 서버가 먼저 가져간다…일반 PC용 메모리는 '후순위'
가격 급등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AI 서버용만으로도 메모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 업체들의 생산 물량이 일반 소비자 시장이 아닌 서버·기업 수요로 먼저 흡수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상인은 "삼성이든 하이닉스든 생산 물량이 대부분 AI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쪽으로 빠지고 있다"며 "HBM과 고용량 DRAM이 우선이다 보니 일반 PC용 메모리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은 가격이 부담되면 구매를 미루지만, 데이터센터나 연구소는 장비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도 결국 사야 할 것"이라며 "이 가격에도 물량을 가져가는 쪽은 개인이 아니라 기업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공급 구조 자체가 취약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이 상인은 "D램을 만드는 회사가 몇 곳 안 되는 구조에서 물량을 조금만 조절해도 가격은 바로 뛴다"며 "예전처럼 많이 만들어 싸게 파는 구조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과거 과잉 생산으로 몇 년씩 적자를 본 뒤라, 반도체 업체들이 지금은 '이 가격에도 사는지'를 보면서 물량을 천천히 푸는 분위기"라며 "기업 수요가 먼저 소화되다 보니 일반 PC용 메모리는 늘 부족한 상태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엔비디아 GPU 세대 교체 앞두고…"최소 2년 가격 인상 이어질 듯"
AI 반도체 세대 교체가 이어질수록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 상인은 "지금 가게에 들어오는 건 엔비디아의 그레이스 블랙웰(Grace Blackwell)에서 쓰이는 물량 일부"라며 "이것만 해도 메모리를 엄청나게 쓰는 구조"라고 말했다.
![용산 전자상가 노트북 매장에 진열된 제품들. [사진=권서아 기자]](https://image.inews24.com/v1/a8e0a838832735.jpg)
이어 "다음 세대인 베라 루빈(Vera Rubin)이 나오면 메모리 사용량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지금도 공급이 막혀 있는데, 그게 본격적으로 깔리면 일반 PC용 메모리가 내려올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런 상황은 몇 달 버티면 끝나는 게 아니라고 본다"라며 "지금 분위기로 판단하면 최소 1~2년은 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완제품·중고시장…"기다리면 내려간다는 말은 옛말"
이 여파는 완제품 시장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한 상인은 "노트북은 메모리가 온보드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제조사가 원가 상승을 피할 수 없다"며 "2026년형 신제품은 같은 급이라도 80만~100만원 이상 비싸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역시 "AI 기능을 넣으려면 메모리를 늘려야 하는데, 이 가격이면 출고가를 안 올리는 게 더 이상하다"며 "플래그십 기준선이 200만원 초반에서 250만원대로 옮겨가고 있다"고 했다.
고사양 PC 시장의 충격은 더 크다. 그는 "불과 6~7개월 전만 해도 700만~800만원이면 맞추던 최고 사양 PC가 지금은 1500만~1700만원을 줘도 쉽지 않다"며 "메모리와 그래픽카드가 동시에 오르니 답이 없다"고 말했다.
메모리도 '램테크'로 왜곡…"자고 나면 10만원씩 올라"
가격 급등이 장기화되면서 이른바 '램테크(메모리 투자)' 분위기도 번지고 있다. 상인은 "자고 일어났더니 6만원, 10만원씩 오르는 경우가 많다"며 "싸게 뜬 물건은 서로 '만 원 더 드릴게요' 하면서 바로 예약하고 송금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개인 소비자뿐 아니라 현금 있는 사람들도 시세를 보고 움직인다"며 "이 가격에도 사는 사람이 있으면 업체들은 물량을 찔끔찔끔 풀면서 다시 가격을 올린다"고 했다.
또 "DDR5는 중고 매물 자체가 씨가 말랐다"며 "출처가 불분명한 해외 직구 제품이나 변형 부품이 섞이면서 오히려 더 위험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에서 1000~2000원에 유통되는 부품이 국내에서는 3만~4만원에 거래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용산 전자상가 노트북 매장에 진열된 제품들. [사진=권서아 기자]](https://image.inews24.com/v1/ead4fe6d71ae8a.jpg)
그는 "급하면 지금 사는 수밖에 없고, 급하지 않으면 기존 기기를 최대한 오래 쓰는 수밖에 없다"며 "이 시장에서는 '조금만 기다리면 내려간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세웅 기자(hseewoong89@inews24.com),권서아 기자(seoahkw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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