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설재윤·최란 기자]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유·석유화학·항공·해운 등 국내 산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란이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고 유조선 통항을 제한하자 국제 유가와 해상 운임이 급등하고, 원가 부담이 커진 정유·석유화학업계의 수익성 악화 우려도 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이다. 해운과 항공 업계도 우회 운항에 따른 비용 증가에 직면했고, 반대로 중동 지역 안보 수요 확대 기대에 방산업계는 반사이익 가능성이 부각된다.

정유·석유화학 동반 압박…원가 급등에 마진 방어 비상

정유업계가 받는 충격은 가장 직접적이다. 국내 정유사들의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산유국을 중심으로 60~70%에 달한다.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유조선 우회 운항이 불가피해졌고, 운송 기간 장기화와 전쟁위험 할증 보험료, 운임 상승이 겹치며 도입 단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원유 가격 급등은 단기적으로 재고평가이익을 통해 실적 개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정제마진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실질 수익성은 오히려 훼손된다. 특히 원가 부담이 확대될 경우 비싼 원유를 들여와 싸게 판매하는 역마진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제 유가 역시 즉각 반응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77.74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6.7% 상승 마감했다. 브렌트유는 장중 한때 82.37달러까지 치솟으며 13% 급등하며 지난해 1월 이후 1년여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배럴당 71.23달러로 6.3% 올랐다. WTI도 장중 한때 75.33달러로 12% 급등해 지난해 6월 이후 최고가를 찍었다.
다만 원유 수급 자체는 당장 마비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라는 평가다.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원유 및 석유제품 비축 물량이 총 2억 배럴 수준으로, 약 221일(7개월) 이상을 버틸 수 있는 완충 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업계의 고민은 더 복합적이다. 나프타 가격이 원유와 동조해 급등하면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제조 원가가 상승한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 과잉과 중국 증설 여파로 제품 가격 전가가 쉽지 않아 스프레드(톤당 마진) 축소가 불가피하다.
석유화학 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NCC 가동률을 낮춰 수익성 방어에 나선 업체들로서는 추가 감산이나 정기보수 확대 등 보수적 운영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범용 제품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타격이 크고, 스페셜티 비중이 높은 업체만 상대적으로 방어력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해운·항공 물류도 부담 가중…우회 운항에 비용 부담 확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내 해운과 항공업계도 동시에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해운업계는 정부 지침에 따라 해협 통과를 중단하고 선박들을 안전 구역에 대기시키고 있으며, 항공업계 역시 중동 영공 제한에 따라 노선을 취소하거나 우회항로를 검토하고 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선박의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정부 지침에 따라 현재 해당 지점을 통항 중인 선박은 없다"며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해협 안쪽 선적항 등에 위치한 일부 선박들은 현재 영향권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으나, 당분간 대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항공업계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내사 중 유일하게 중동 노선을 운영하는 대한항공은 최근 두바이행 항공편을 회항 및 결항 조치했으며, 중동 공역 상황에 따라 운항 일정을 실시간으로 조정하고 있다.
문제는 사태 장기화에 따른 비용 부담이다. 해운과 항공 모두 대체 경로를 이용할 경우 운항 거리와 시간이 늘어나거나 연료비 부담이 급증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항공업계는 영업비용의 약 30%를 차지하는 항공유 가격이 국제 유가 상승과 맞물려 요동칠 경우 수익성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
김규왕 한서대학교 항공운항과 교수는 "현재 비축유로 5~6개월은 버틸 수 있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결국 예비 연료까지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비용이 증가하면서, 티켓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여행객 수요도 줄어 항공 산업 전반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방산은 오히려 수혜 가능성…무기 수요 구조적 증가
중동 긴장 고조가 국내 방산업계에 수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동 전역의 군사적 긴장 수위가 높아지며 방공 체계와 요격 미사일 수요 증가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원준 전북대학교 첨단방위산업학과 교수는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미사일, 대공방어 쪽"이라며 "중동 지역의 추가 수요나 기존 계약 물량의 조기 납품 요청 등 여러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이미 천궁-II 등이 수출돼 있고 전쟁 상황에 따라 수요가 더욱 증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천궁-II는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수출 계약을 맺은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로 탄도미사일과 항공기 등을 요격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고 있다.
채운샘 하나증권 연구원도 보고서를 통해 "전쟁 종결 시점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전쟁이 조기 종료되더라도 이란의 후속 공격 가능성과 역내 불확실성에 대비해 중동 지역의 무기 수입이 중장기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채 연구원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이에 따른 이란의 탄도미사일, 드론 보복으로 방공체계 요격 미사일의 재고 부족이 현실적인 제약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이란은 수백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통상 탄도미사일 한 발에 복수의 요격미사일이 발사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뿐만 아니라 중동 주요 국가들의 요격미사일 소모는 빠르게 누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지정학적 불확실성 확대와 무기 수요 증가는 구조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중동 내 급격한 방공 미사일 소진으로 인한 재고 보충 수요가 확대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설재윤 기자(jyseol@inews24.com),최란 기자(ra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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