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며 국제유가와 국내 기름값이 급등하자 정부가 주유소 유류 판매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최고가격지정제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실제 시행 시 시장 개입 논란과 업계 반발이 불가피한 만큼 정부 내부에서도 신중론이 동시에 제기되는 분위기다.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임시 국무회의에서 유류 가격 급등 상황을 점검하며 매점매석 등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강력 대응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아직 객관적으로 심각한 차질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도 리터당 200원 가까이 올리는 곳도 있다고 한다"며 "(주유소들이) 휘발유 가격에 바가지를 씌우는 행위에는 엄중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최고가격 지정 가능성을 언급하며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국 기름값은 며칠 째 급상승 중이다. 6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L)당 1856.3원으로 전날보다 22.0원 상승했고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하루 만에 33.4원이 오른 1863.7원을 기록하며 휘발유 가격을 넘어섰다.
정부가 검토하는 최고가격지정제 조치는 석유 제품 판매 가격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특정 시기에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의 최고 판매가격을 정해 과도한 가격 상승을 제한하는 제도다.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 석유사업법 제23조는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등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정부가 최고가격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역시 물가 급등 상황에서 가격 통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두고 있다.
다만 현재 단계는 어디까지나 검토 수준이다. 시행하려면 정부가 고시를 통해 최고가격 수준과 적용 기간, 대상 품목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세부 논의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재정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함께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현 단계에서 제도 시행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향후 국제유가와 시장 가격이 빠르게 안정될 가능성도 있고, 현재 일선 주유소를 대상으로 현장 점검도 진행 중인 만큼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 통제가 현실화될 경우 정책 설계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유소 판매가격만 상한을 두면 실제 부담이 일선 주유소에 집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원유 도입 가격과 정유사의 공급가가 높아진 상황에서 판매 마진까지 제한될 경우 주유소 소매업자들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단순히 소매가격만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도매가격 구조까지 함께 손봐야 하는데, 이 경우 정유업계와의 협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가격 통제가 단기적으로는 상승 속도를 억제할 수 있지만 제도 종료 이후 가격이 한꺼번에 반등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국내 석유 시장은 지난 1997년 이전까지는 정부 고시를 통해 인위적으로 유류 가격을 통제해왔지만 같은해 부터는 전국 주유소 소매가격 자유화가 진행돼 가격 경쟁 체제로 운영돼 왔다. 시장 가격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조치는 소매가격 자유화 이후 사실상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정책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산업부 관계자 역시 "우려되는 지점은 정부가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할 경우 블랙마켓(암시장)이 성행하는 등 시장이 기형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주유소 업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최고가격지정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면서도 "국제유가나 도매가 상승이 심화되고 있어 소매가격만 묶어서는 주유소가 손해를 볼 수 있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공급가 연동이나 손실보전 대책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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