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은경 기자] 롯데지주가 자사주 딜레마에 빠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권 방어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백기사' 역할을 해온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서다.
11일 전자공시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지난 9일 보통주 자기주식 524만5461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소각 예정 금액은 6일 종가(3만1700원) 기준 1662억8111만원이며, 소각 예정일은 오는 3월 31일이다. 소각이 완료되면 자사주 비중은 27.5%(2890만주)에서 22.5%(2365만4539주)로 축소된다. 자사주 평가 금액은 6일 기준 약 9161억원에서 약 7500억원으로 줄어든다.

문제는 남은 물량에 대한 추가 소각 여부다. 지난 6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제3차 개정 상법'에선 1년 6개월 내 자사주를 소각하도록 의무화했다.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 제도 실시 등 일정한 사유가 인정돼 이사 전원이 서명·날인한 보유처분계획을 매년 주총에서 승인받는 경우는 예외로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밸류업 기조 속에서 특정 기업만 자사주 소각을 예외로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원칙적으로 모든 기업이 동일한 잣대로 소각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6일 밸류업 가이드라인 관련 해석을 통해 "명확한 사업 목적이나 임직원 보상 근거 없이 경영권 방어용으로 자사주를 장기 보유하는 것은 주주 가치를 저해하는 행위"라고 규정하며 사실상 전량 소각을 압박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유사시 활용 가능한 '백기사'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롯데지주가 보유한 자사주는 의결권은 없지만 경영권 분쟁 등 비상시에는 우호 세력에게 매각해 의결권을 부활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어 수단이었다. 특히 과거 형제간 경영권 분쟁의 홍역을 치른 롯데에게 자사주는 사실상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2017년 롯데쇼핑·칠성·푸드·제과 등 4개 계열사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한 뒤, 투자 부문을 합병해 롯데지주를 출범시켰다. 이 과정에서 각 계열사 투자 부문이 승계받은 자사주에 지주사 신주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의결권을 부활시키는 일명 '자사주의 마법'을 통해 지배력을 공고히 했다.
상법 제369조에 따르면 회사가 보유한 자기주식은 의결권이 없으나, 인적분할 과정에서 지주사가 배정받은 '사업회사의 신주'는 자사주가 아닌 '타 법인(자회사) 주식'으로 간주돼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롯데지주는 분할 합병 과정에서 확보한 자사주 물량을 활용해 추가 출연 없이도 지주사를 설립하며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롯데지주는 자사주 소각을 단계적으로 추진함과 동시에 주총을 통한 특별보유 결의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익수 수석애널리스트는 "3차 상법 개정으로 그동안 자기주식을 자금조달, 지배구조 개편 및 경영권 방어, 사업재편 등의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해 왔던 선택지가 상당 부분 제약되게 됐다"면서 "지배구조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거나 자기주식을 재무·지배구조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해 온 기업일수록 제도 변화의 영향이 크게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경 기자(mylife144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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