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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삶·재산 와르르, 대형산불 이후 적극 행정은 없었다


낡은 재난 시스템, 외상후스트레스 급증

지난해 3월 남안동 IC 인근에서 바라본 안동시 일직면 야산.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3월 남안동 IC 인근에서 바라본 안동시 일직면 야산.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대형산불은 주변의 삶과 재산을 한꺼번에 불태운다. 대형산불 이후 적극적 행정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상과 복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산불 주변 지역민의 외상후스트레스는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갈수록 지구 가열화가 빨라지고 기후변화가 확산하면서 대형산불 위험성은 커지고 있다. 낡은 재난 시스템을 교체하고 적극적 행정으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녹색전환연구소,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2025년 초대형 산불 대응 교훈과 개선점’을 주제로 17일 국회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지난해 3월 발생한 영남 초대형 산불 1주년을 맞아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재민 3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최종 결과를 바탕으로 현행 재난 대응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산불특별법 개정 등 근본적 대책이 논의됐다.

영남 산불 피해주민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피해 규모에 대한 주민 체감과 행정기관의 평가 사이에 큰 괴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주택(65%)과 가재도구(68%) 등에 80% 이상의 극심한 피해를 체감했다고 답했다. 반면 행정기관의 피해 규모 산정 과 보상 평가에 대해서 가재도구(80%), 영업장(71%), 주택(67%) 순으로 과소평가됐다고 응답했다. 복구지원비가 불충분하다는 응답은 89%에 달했다.

정보 공백이 행정 불신을 낳는 구조적 원인도 확인됐다.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 주민일수록 피해가 과소평가됐다고 느꼈다. 피해 산정 절차 자체를 불합리하게 인식하는 연쇄 구조가 확인됐다.

행정 불신은 피해 주민들의 트라우마로 직결됐다. 외상후 스트레스(PTSD) 검사 결과, 응답자의 87%가 ‘위험 이상’에 해당됐다. 고위험군은 67%, 정상 범위에 해당하는 응답자는 8%에 그쳤다. 구호 지원 배분이 불공정하고, 행정 신뢰도가 낮을수록 PTSD 위험이 악화하는 인과관계가 확인됐다.

실태조사를 공동 수행한 황정화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대다수 주민이 피해 조사가 합리적이지 않았다고 답했고 보상 산정 근거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행정의 효율성을 이유로 당사자를 배제한 일방향적 복구는 주민들의 심리적 재난을 장기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 당사자가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복구 과정과 재건 방향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적 거버넌스가 재난 대응의 기본 원칙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승규 경북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은 “일상 회복이란 ‘살던 곳에서 살고, 일하던 곳에서 일하며, 만나던 사람을 만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며 “재건위원회는 현실적 지원과 피해 주민 의견 반영을 통해 실질적 복구와 회복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영곤 법무법인 수호 변호사는 “피해복구를 위한 구체적 배상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실제적 손해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며 “영남 초대형 산불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 명확히 규명돼 고통받는 시민들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난 대응 시스템 개편의 시급성도 언급됐다. 김형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한국 산불 위험성 변화 연구’를 내놓았다.

지난해 3월 남안동 IC 인근에서 바라본 안동시 일직면 야산. 산불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후변화가 심화하면서 산불위험지수가 치솟고 있다. [사진=그린피스]

산불위험지수(FWI)는 기온(온도), 습도, 바람 3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산출한다. 분석 결과, 최초 산불 발생위험 시점은 산업화 이전 대비 현재 전국 평균 13일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1.5℃ 상승하면 35일, 4.0℃는 59일까지 앞당겨졌다. 산불 위험 기간도 크게 늘어 산업화 이전 연평균 67일이던 기간이 현재 기준 평균 102일(최대 194일)로 늘어났다.

더 심각한 점은 산불 위험을 낮춰온 여름철 장마의 완화 효과가 소멸될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데 있다. 김 교수는 “AI 기반 고해상도 기후변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후위기로 인해 여름철 장마의 산불 억제 효과마저 붕괴됐다”고 설명했다.

이선주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이번 연구는 한반도의 기후가 대규모 산불에 취약한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산불이 더 이상 봄철의 불청객이 아닌 연중 상시화가 예상되는 기후재난인 만큼, 과거에 머물러 있는 현행 방재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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