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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NOW] 기후리스크, 이젠 법적 리스크


재무적·법적 책임의 문제

2025년 1월 팔리세이드즈와 이튼 화재가 로스앤젤레스를 휩쓸었을 때 파괴된 것은 산림과 주택만이 아니었다. 이 산불은 글로벌 보험시장에서 수년간 우려됐던 위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보험사들은 대규모 보험금 청구에 직면했고, 보험 계약자들은 지급 지연과 손해액 산정 분쟁에 부딪혔고, 규제당국과 보험업계 사이의 긴장은 커졌다. 미국 최대 주택보험사 가운데 하나인 스테이트팜은 이번 화재와 관련해 1만3000건이 넘는 청구를 접수·처리했고, 50억 달러 이상을 지급했다.

무디스 RMS는 로스앤젤레스 산불의 보험손실을 200억~300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했다. 기후재난이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즉시 현금 유출과 가격 조정으로 이어지는 재무 사건이라는 사실이 숫자로 확인된 것이다.

김정남 수석전문위원(법무법인 화우 ESG센터) [사진=법무법인 화우]
김정남 수석전문위원(법무법인 화우 ESG센터) [사진=법무법인 화우]

미국, 호주, 유럽 전역에서 보험사들은 기후리스크를 재산정하고 있다. 관련 보험료는 급등하고, 보장 한도는 축소되고 있으며, 고위험 지역에서는 보험사들이 아예 철수하고 있다. 보험료가 오른다는 것은 단순히 비용이 늘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산가치, 투자회수 가능성, 공급망 안정성, 사업 연속성까지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다. 이 변화는 결국 기업의 재무와 공시 체계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제도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6년 2월 25일 ESG 공시 로드맵 의견수렴안을 공개하면서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기업, 2029년부터는 10조원 이상 기업으로 의무공시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역시 2026년 2월 제1호 ‘일반요구사항’과 제2호 ‘기후 관련 공시’를 공표했다. 여기서 기업에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배출량 수치의 나열이 아니다.

기후 관련 물리적 위험과 전환 위험이 재무상태, 재무성과, 현금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설명하라는 요구다. 핵심 사업장이 홍수나 산불, 폭염, 침수에 취약하고 보험료나 갱신에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업 내부 전략적 고려사항이 아니라 공시 검토 대상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후리스크는 공시 이슈를 넘어 법적 책임의 문제로 바뀐다. 기업이 합리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던 기후위험을 재무적으로 중요한 정보로 관리하지 못했다면, 그 문제는 곧 허위·누락 공시, 내부통제 부실, 투자자 오인의 문제로 옮겨갈 수 있다.

이사회 책임도 무거워지고 있다. 기후리스크는 이제 ESG 담당 조직의 과제가 아니라, 선관주의의무와 감독의무의 문제로 들어오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기후소송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런던정경대 그랜덤연구소의 2025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기후소송은 약 3000건에 달하고, 2024년에 새로 제기된 사건의 약 20%는 기업을 직접 겨냥했다. 네덜란드 헤이그 항소법원도 2024년 11월 Shell 사건에서 대기업이 위험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주의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기업의 기후대응이 더 이상 자율적 권고 수준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법원이 판단할 책임의 문제로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급망은 또 다른 위험 지점이다. 많은 기업이 여전히 공급망 기후리스크를 납기 차질 정도로 이해하는데 유럽의 규제는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다.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D)은 2024년 7월 25일 발효됐고, 적용 대상 기업에게 자사 운영뿐 아니라 자회사와 활동사슬 전반에서 인권·환경상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고 예방·완화할 의무를 부과한다.

만약 핵심 공급업체가 반복적인 침수 지역에 위치해 있고 과소보험 상태이거나 보험 조달이 어려운 상황인데도 원청기업이 아무런 점검 없이 그 위험을 방치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운영 차질이 아니라 실사체계의 결함으로 읽힐 수 있다. 공급망의 기후 취약성은 이제 구매팀의 관리지표가 아니라 법무·재무·ESG가 함께 봐야 할 책임 구조의 문제다.

기업이 기후리스크와 법적 리스크와 관련해서 던져야 할 질문은 훨씬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리 핵심 자산 가운데 기후리스크에 따른 복구비와 영업중단 손실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곳은 어디인가. 주요 공급업체 가운데 기후재난 이후 몇 주만 멈춰도 생산 차질이 발생할 곳은 어디인가. 그리고 이 변화가 손익계산서, 충당부채, 설비투자 우선순위, 현금흐름 전망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감축목표와 친환경 비전만 반복하는 것은, 기후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당 기업이 리스크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결국 기업이 받아들여야 할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후리스크는 더 이상 ESG 보고서의 한 장에 머무는 이슈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보험료 인상, 보장 축소, 자산가치 하락, 투자부담 증가, 공급망 차질, 운영 불확실성의 형태로 기업 재무에 들어오고 있다. 회계와 자본배분의 문제이고, 소송과 책임의 문제이며, 공시와 내부통제의 문제다.

환경 이슈나 공시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재무적·법적 책임의 문제가 된 것이다.

김정남 수석전문위원(법무법인 화우 ESG센터) jnkim@yoon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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