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설재윤 기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을 관리하기 위한 자체 통제 시스템 공개를 예고하면서 국내 해운업계와 정부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정부가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통행세 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미국 역시 강도 높은 제재를 경고한 가운데, 선사들은 이란에 비용을 지불할 수도, 그렇다고 독자적인 탈출구를 찾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호르무즈 해협 [사진=AP/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b3cb83be716248.jpg)
18일 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안쪽에는 여전히 국내 선사 선박 26척과 선원 158명이 발이 묶인 채 고립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브라힘 아지지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 위원장은 "국가 주권 수호와 국제 무역 안보 확보의 틀 안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관리하기 위한 전문적인 메커니즘을 마련했다"며 이를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직 상업용 선박과 이란에 협력하는 국가만이 새로운 체제의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며, 지정 항로 마련과 해상 안전 감시 등을 대가로 사실상 '통행세(비용 및 수수료)'를 공식 징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 조치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미·중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호르무즈 해협의 군사화 및 통행료 부과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상호 확인한 직후 나왔다. 국제사회의 압박에 맞서 해협 통제권을 선제적으로 쥐겠다는 정면 돌파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반면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란에 통행료를 내거나 안전 보장을 요청하는 해운사는 제재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에 돈을 내면 미국 금융 시스템에서 퇴출당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겠다는 경고다.
우리 정부 역시 통행세 불가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14일 "특별한 서비스 없는 과금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통행세 지불을 거부한다는 기조를 명확히 했다.
정부의 단호한 원칙론과 미국의 제재 경고 속에서 현장 선사들은 출구를 찾지 못해 하소연하고 있다. 이란의 요구에 응할 수도 없지만, 정부의 공조나 외교적 돌파구 없이는 무작정 버티는 것 외에 선사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SK해운 관계자는 "현 상황은 양자택일이라기보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진퇴양난"이라며 "개별 선사가 단독으로 행동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박과 선원의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해수부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며 "선사뿐만 아니라 정유사, 화주, 보험사, 정부 기관 등 이해관계자들의 종합적인 조율과 제반 여건이 갖춰져야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박의 고립 기간이 길어지면서 발생하는 막대한 고정비와 매출 손실도 큰 부담이다. 특히 2분기부터 시작되는 해운업계의 본격적인 성수기 진입 시점과 맞물려 타격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고립된 선박들은 소형 보트를 통해 식량과 식수 등 보급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MM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해협 내에 묶인 선사들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고립이 장기화되면서 비용만 지출되고 매출 손실이 쌓여 부담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보통 2~3분기는 여름휴가부터 연말까지의 하반기 소비재 물동량이 한 분기 일찍 움직이는 컨테이너선사의 대대적인 성수기"라며 "여기에 유가까지 두 배로 뛰어 전 노선에 비용 부담이 커진 데다, 중동으로 향하는 컨테이너 매출 수요처 자체가 증발해버려 해협이 재통항된다 하더라도 당장 타격을 만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설재윤 기자(jyseo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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