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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NOW] 해지 버튼은 왜 '꼭꼭' 숨어 있을까


‘눈속임 설계’가 청구서가 되는 시대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가입할 때는 클릭 두 번이면 됐는데, 해지하려고 하니 도무지 해지 버튼을 찾을 수가 없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일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도 다르지 않았다. 프라임 멤버십의 해지 절차가 어찌나 복잡했던지, 회사 내부에서조차 그 과정을 호메로스의 장대한 서사시 ‘일리아드’에 빗대 ‘일리아드 플로우(Iliad Flow)’라 불렀다.

트로이 전쟁을 다룬 그 작품이 길고 지난한 여정으로 유명하듯, 한번 들어서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려운 미로라는 자조였다. 결국 2025년 9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아마존이 소비자를 프라임에 가입시켜 놓고 해지를 어렵게 만든 행위를 문제 삼아 25억 달러 규모의 합의를 끌어냈다.

이는 정부에 귀속되는 10억 달러의 민사제재금과 피해 소비자 약 3500만 명에게 돌아갈 15억 달러의 환급금을 합한 규모였다.

이근우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화우]
이근우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화우]

다크패턴(dark pattern), 소비자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화면 설계를 의미하는 용어다. 무료체험이 어느새 유료 결제로 넘어가 있고, 해지 버튼은 한참을 찾아야 겨우 찾을 수 있으며, 결제 직전에야 숨은 비용이 드러난다.

이런 설계는 오랫동안 ‘교묘하지만 불법은 아닌’ 기법으로 여겨졌다. 아마존 사건은 그 경계가 더 이상 회색지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 사건의 소송은 앞선 행정부 시기에 제기됐지만, 합의를 마무리한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의 FTC였다. 다크패턴 규제가 정권에 따라 쉽게 사라질 의제가 아니라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짚어 둘 반전이 하나 있다. 구독 해지를 가입만큼 쉽게 하도록 강제하려던 FTC의 ‘클릭-투-캔슬(click-to-cancel)’ 규칙은 정작 2025년 7월 14일 시행을 며칠 앞두고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제8연방항소법원에서 무효가 됐다(Custom Communications, Inc. v. FTC, 2025. 7. 8. 판결).

그런데도 아마존에 대한 제재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던 법률, 곧 ‘온라인 쇼핑자 신뢰회복법(ROSCA)’과 연방거래위원회법이 그 근거였다. 새 규칙이 좌초하더라도 기존 법과 주(州)별 자동갱신법이 다크패턴을 정조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개정 전자상거래법에 따라 2025년 2월 14일부터 소비자 동의 없이 결제액을 올리는 ‘숨은 갱신’, 가격을 단계적으로 조금씩만 드러내는 ‘순차공개 가격책정’, 소비자에게 불리한 항목을 미리 선택해 두는 ‘특정 옵션의 사전 선택’, 소비자에게 불리하거나 사업자에게 유리한 선택항목을 시간적으로 두드러지게 하여 소비자의 오인을 초래하는 ‘잘못된 계층구조’, 해지를 일부러 번거롭게 만드는 ‘취소·탈퇴 방해’등 여섯 가지 유형의 다크패턴을 규율하는 법조항이 시행되었다(순차공개 가격책정은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6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하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위반 여부를 가릴 해석 기준까지 담은 소비자보호지침을 2025년 10월 24일부터 시행하며 규제의 그물을 한층 촘촘히 했다.

그리고 공정위는 시행된 법률의 규정에 따라 실제 소비자에게 혼란이나 불편을 초래할 다크패턴에 대해 규제를 하여, 말뿐인 규제가 아님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즉, 공정위는 한국소비자원과 같이 2025년 2월부터 7월까지 많은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OTT‧음원 구독, 쇼핑 등 분야의 온라인 플랫폼에서 소비자에게 혼란이나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다크패턴 의심사례가 있는지를 점검하여 36개 사업자의 45건에 대해 시정하거나 시정계획을 제출 받았는데, 그중 가장 많이 적발된 유형이 ‘취소·탈퇴 방해’였다.

그리고 공정위는 2025년 10월 15일, OTT·음원·커머스 분야 구독 플랫폼을 운영하는 4개 사업자가 멤버십 요금을 올리면서 소비자의 명시적 동의를 받지 않거나 해지에 필요한 정보를 감춘 행위에 시정명령과 과태료를 부과했다.

다크패턴 의심사례 모니터링과 실제 시정명령을 내린 사례에서 ‘취소·탈퇴 방해’가 가장 많다는 것은 적지 않은 기업에서 여전히 해지를 번거롭게 만드는 유인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럽연합도 디지털서비스법(DSA) 제25조로 이용자의 판단을 흐리는 온라인 인터페이스 설계를 금지하고 있으며 다크패턴, 구독 해지 방해, 불공정 개인화 등을 겨냥한 디지털공정성법(Digital Fairness Act) 입법안을 2026년 4분기에 제안할 예정이다. 가입과 해지, 가격 표시와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화면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이 규제의 시야에 들어왔다.

결국 화면을 얼마나 소비자 입장을 생각해서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법적 리스크를 가르는 시대가 됐다. 그리고 이는 ESG의 문제이기도 하다. 소비자를 속여 끌어올린 수치는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몇 곱절의 제재로 되돌아온다. 사회(S)의 영역이다.

FTC는 아마존 내부 문건상 임직원들이 프라임 가입·해지 절차의 문제를 인지하고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문제 있는 설계가 상당 기간 유지됐다면, 이는 단순한 UX 문제가 아니라 내부통제와 의사결정의 문제다. 지배구조(G)의 영역이다. 어떤 화면을 띄울지 정하는 일은 이제 마케팅팀의 재량을 넘어, 이사회와 내부통제가 들여다봐야 할 사안이 됐다.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부터 해야 할까. 가입과 결제, 해지로 이어지는 화면 전체를 규제 기준에 비추어 다시 점검하고, 무료체험이 유료로 전환되거나 요금을 올릴 때 명시적 동의를 어떻게 확보하고 또 어떻게 기록으로 남길지 절차를 정비하는 일이 먼저다.

해지를 가입만큼 쉽게 만드는 것은 버튼 위치를 옮기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어떤 설계가 어느 법의 어느 조항에 저촉되는지를 가려내는 일이며, 한국과 미국, 유럽의 기준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만큼 글로벌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이라면 관할별로 따로 살펴야 하는 사항은 다를 수 있으나, 그 본질은 다르지 않은 작업이다.

다크패턴 규제의 핵심은 소비자에 대한 투명성에 있다. 과거처럼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번거롭게 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붙들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바뀌었다. 눈속임으로 고객을 붙들더라도 그러한 고객이 나중에 가려진 눈을 뜨게 될 때는 그 기업을 떠나게 될 것이고, 떠나면서 기업에 청구서를 제시할 것이다.

그 청구서는 바로 과태료나 시정명령과 같은 행정제재와 소송, 그리고 떨어진 평판의 명세서로 구성될 것이다. 소비자에 대한 정직한 설명과 인터페이스의 설계가 이제는 비용이 아니라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해지 버튼을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업이라야, 다음 결제일에도 고객을 붙잡아 둘 수 있다.

이근우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ESG센터) klee@yoonyang.com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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