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박지영 기자] 서양의 대표 우화 '양의 탈을 쓴 늑대(A wolf in sheep's clothing)'는 겉모습과 본질이 다를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요즘 유통업계를 보면 이 우화가 떠오른다.
최근 BGF리테일의 CU는 '그로서리 특화점'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채소와 과일·정육·계란·냉장식품까지 갖춘 매장은 이제 편의점을 넘어 작은 슈퍼마켓에 가깝다.
기업 입장에서야 당연한 선택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팔고 새로운 수익원을 찾는 것은 경영의 기본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이 매장은 정말 '편의점'인가.
편의점 간판을 달았지만 소비자는 이곳에서 장을 본다. 저녁 식재료를 사고 냉장고를 채우며 일주일 먹거리를 준비한다. 기능은 사실상 동네슈퍼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법은 여전히 편의점으로 분류한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등록의무와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무 등 일정한 규제를 두고 있다. 반면 대부분 편의점은 규제대상에서 제외된다. 제도가 만들어질 당시 편의점은 도시락과 음료, 담배 등을 파는 소규모 점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그 전제를 넘어섰다.
그로서리 특화점은 생활밀착형 식료품 판매를 핵심경쟁력으로 삼고 있다. 동네슈퍼와 동일한 고객을 두고 경쟁하면서도 규제체계는 과거의 업태분류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유통산업발전법 입법목적은 대형유통업과 중소유통업의 균형발전과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에 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을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실제 영업형태는 슈퍼마켓에 가까운데 간판이 편의점이라는 이유로 다른 규제를 적용한다면 입법취지와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기업은 잘못이 없다.
허용된 제도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선택할 뿐이다. 오히려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 같은 변화를 꾀하지 않는 것이 직무유기일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정부를 향해야 한다.
'편의점' 명칭만 유지하면 실제 영업형태가 달라져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가.
유통산업발전법이 보호하려는 대상은 간판이 아니라 경쟁질서다. 현실에서는 간판만 편의점이면 사실상 슈퍼마켓 기능을 수행해도 규제망을 피해간다. 이것이 제도의 빈틈이라면 손질해야 할 대상은 기업이 아닌 법이다.
물론 반론도 존재한다. 대부분 편의점은 가맹점형태이며 영세자영업자가 운영한다. 소상공인기본법이 보호하려는 대상 역시 이들 소상공인의 지속가능한 경영기반이다. 그들에게 대형마트 수준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과도할 수 있다.
이 지적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로서리 기능을 대폭 강화한 일부 대형점포까지 동일한 잣대로 볼 이유는 없다. 이제는 업태가 아니라 실제 영업내용과 매장규모, 신선식품 비중, 지역상권 영향력 등을 기준으로 규제를 재설계해야 한다.
해외 유통규제 역시 업태명칭보다 영업규모와 시장영향력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편의점'이라는 이름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CU의 그로서리 전략은 시장변화에 발맞춘 신속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 성공이 제도허점을 활용한 결과라는 비판까지 피하기는 어렵다.
시장은 이미 진화했다.
이제 법과 규제도 업태이름이 아닌 '본질'을 봐야 할 때다. 그래야 유통산업발전법이 지향하는 공정한 경쟁질서와 지역상권 보호, 그리고 소비자 선택권도 함께 지킬 수 있다.
/박지영 기자(pj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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