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겨울에는 월 20만원 정도를 쓰면서도 굉장히 춥게 살았어요."
10일 제주에서 만난 김은애 씨는 지난해까지 액화석유가스(LPG) 보일러와 전기 난방을 함께 사용했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월 20만원 안팎에 맞춰 썼지만 그만큼 추위를 감수해야 했다. 김씨는 집을 따뜻하게 데우는 주변 가구의 경우 겨울철 LPG 비용만 월 40만~50만원까지 나온다고 했다.

지난 6월 김씨 집에는 삼성전자 'EHS 히트펌프 보일러'가 들어왔다. 설치 후 처음 나온 히트펌프 전기요금은 15일 사용 기준 약 2만5000원이었다.
물론 아직 본격적인 난방을 하지 않는 여름철 요금이라 지난해 겨울 난방비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김씨는 "올겨울 비용은 줄이고 집은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이날 제주에서 공개한 제품은 크게 두 가지다. 김씨 집에 설치된 'EHS 히트펌프 보일러'와 다른 단독주택에서 실증 중인 'EHS 올인원'이다.
둘 다 바깥 공기의 열을 가져와 사용하는 공기열 히트펌프지만 하는 일이 다르다. EHS 히트펌프 보일러는 기존 가스·기름보일러를 대신해 물을 데우고 이를 바닥난방과 온수에 사용한다. EHS 올인원은 여기에 에어컨의 냉방 기능까지 합쳤다. 실외기 한 대로 냉방과 바닥난방, 온수를 모두 해결하는 방식이다.
히트펌프는 이름은 낯설지만 원리는 에어컨과 비슷하다. 가스나 기름을 태워 열을 만드는 대신 전기로 냉매를 순환시켜 바깥 공기에 있는 열을 가져온다. 이 열로 물을 데워 바닥난방과 온수에 사용한다.
신문선 삼성전자 DA사업부 상무는 "펌프가 물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듯 히트펌프는 열을 옮기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첫 집은 '보일러형'…팬 돌아가는데 조용
![제주 애월읍에 자리한 삼성전자의 히트펌프 실증 1호 가정. [사진=박지은 기자]](https://image.inews24.com/v1/98f230d3fa8e1e.jpg)
김씨 집에 설치된 EHS 히트펌프 보일러의 역할은 명확하다. 기존 LPG 보일러를 대신하는 것이다. 외부 공기에서 가져온 열로 물을 데우고 따뜻해진 물을 바닥으로 보내 난방하거나 욕실·주방의 온수로 사용한다.
이 집에는 물을 미리 데워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축열식'이 적용됐다.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많은 제주에서 전력이 남는 시간대에 물을 데워뒀다가 난방과 온수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강점은 효율이다. 김씨 집에 설치된 제품의 계절성능계수(SCOP)는 4.9다. 연간 기준 전기에너지 1을 사용해 약 4.9에 해당하는 난방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의미다. 정부 히트펌프 보급사업의 에너지 효율 가이드라인인 4.5보다 높다.
현장에서 먼저 체감된 것은 소음이었다. 부엌과 가까운 곳에 설치된 커다란 실외기의 팬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가도 작동음이 크지 않았다. 최저 소음은 35데시벨(dB) 수준이다.
팬을 자세히 보면 가장자리가 매끈하지 않고 톱날처럼 잘게 갈라져 있다. 삼성전자 개발진은 소리 없이 날아 먹잇감에 접근하는 수리부엉이 날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수리부엉이 날개의 솜털과 독특한 깃털 구조처럼 팬 가장자리를 톱날 형태로 만들어 공기가 지나갈 때 발생하는 소음을 줄인 것이다.
김씨도 "부엌하고 바로 이어져 있는데 진짜 소음이 없다"며 "그게 지금도 놀랍다"고 말했다.
![제주 애월읍에 자리한 삼성전자의 히트펌프 실증 1호 가정. [사진=박지은 기자]](https://image.inews24.com/v1/4b82179b61b1e4.jpg)
둘째 집은 냉방까지 '올인원'…실외기 한 대로 세 가지
![제주 애월읍에 자리한 삼성전자의 히트펌프 실증 1호 가정. [사진=박지은 기자]](https://image.inews24.com/v1/a3e19700b36c3c.jpg)
두 번째로 찾은 제주시 도남동 단독주택에는 한 단계 더 확장된 'EHS 올인원'이 설치돼 있었다. EHS 히트펌프 보일러가 난방과 온수를 담당한다면 올인원은 냉방까지 하나의 시스템에 넣은 제품이다.
차이는 집 안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벽걸이형 에어컨에서는 찬바람이 나오고 있었는데 주방 수도꼭지를 틀자 따뜻한 물도 나왔다. 냉방과 온수 공급을 각각 다른 장치가 하는 게 아니다. 집 밖에 놓인 실외기 한 대가 냉방과 바닥난방, 온수를 모두 담당한다.
비결은 '열 회수(Heat Recovery)'다. 에어컨은 실내의 열을 밖으로 빼내 집을 시원하게 만든다. 일반 에어컨이라면 밖으로 버릴 이 열을 EHS 올인원은 물을 데우는 데 다시 쓴다.
여름에 에어컨을 켜면서 샤워 등에 사용할 온수까지 만드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통해 여름철 에너지 사용량을 약 20%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 애월읍에 자리한 삼성전자의 히트펌프 실증 1호 가정. [사진=박지은 기자]](https://image.inews24.com/v1/1d74a4f8575dd8.jpg)
신 상무는 "열 회수는 원래 고급 대형 빌딩에서 사용하던 고난도 기술"이라며 "이를 소형화해 가정에서도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고 말했다.
공간도 줄일 수 있다. 이 집에는 벽걸이형 에어컨 4대가 있지만 실외기는 한 대다. 기존 방식이라면 에어컨용 실외기와 히트펌프용 실외기를 각각 설치해야 하지만 올인원은 이를 하나로 합쳤다. 국내처럼 에어컨 보급률이 높고 공동주택 비중이 큰 시장에서 특히 필요한 방식이라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이용하면 스마트폰으로 냉방과 난방, 온수 상태도 확인하고 조절할 수 있다.
설치 방식도 집마다 달라진다. 삼성전자는 거주 인원과 집 크기, 욕실 수, 온수 사용량 등을 조사한 뒤 필요한 설비를 정한다.
이 집은 평소 노부부가 살지만 주말이면 아들 가족이 찾아온다. 온수 사용량이 크게 늘어나는 점을 고려해 200리터 온수탱크와 100리터 난방용 버퍼탱크를 따로 설치했다.
집주인 양창희 씨는 기존 기름보일러에 연평균 약 120만원을 썼다고 했다. 비용뿐 아니라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 직접 확인하는 것도 일이었다.
양씨는 "기름이 떨어졌는지 남아 있는지 자꾸 확인하러 가야 했다"며 "지금은 온도만 설정해 놓으면 알아서 해주니까 편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요금 걱정만 빼면 만점이다. 아주 좋다"고 말했다.
![제주 애월읍에 자리한 삼성전자의 히트펌프 실증 1호 가정. [사진=박지은 기자]](https://image.inews24.com/v1/3619f5e1f01801.jpg)
제주서 최대 980만원 지원…올겨울이 진짜 시험대
두 제품은 국내 사업 단계도 다르다. EHS 히트펌프 보일러는 제주 난방 전기화 보급사업을 통해 실제 가정에 설치되고 있다. 반면 냉방까지 합친 EHS 올인원은 유럽에서는 판매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실증 단계다. 삼성전자는 실제 거주 환경에서 1년간 제품을 가동하며 국내 주택에 적합한지 살펴볼 계획이다.
제주가 삼성전자 히트펌프의 시험대가 된 것은 정부의 '난방 전기화' 정책과 맞닿아 있다. 제주도는 올해 상반기 1042가구에 이어 하반기 1418가구를 추가해 총 2460가구에 히트펌프를 보급할 계획이다.
가구당 사업비는 최대 1400만원이다. 국비와 도비로 70%, 최대 980만원을 지원해 소비자가 부담하는 금액은 최대 420만원이다. 대상은 3킬로와트(kW) 이상 태양광 설비가 설치된 단독주택 가운데 가스나 기름보일러를 공기열 히트펌프로 교체하는 가구다.
삼성전자는 제주만 보고 있지 않다. 겨울이 추운 경기 양평과 중부 내륙 충주,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해 등에서도 히트펌프를 가동하며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바깥 공기의 열을 가져오는 제품 특성상 기온이 낮을수록 성능을 확보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제주의 EHS 올인원도 1년간 실증한다. 여름 냉방뿐 아니라 가을과 겨울을 거치면서 실제 난방 성능과 전력 사용량을 확인한다. 유럽에서 이미 판매 중인 제품과 비교해 한국의 계절과 주거환경에 맞는지도 살펴볼 계획이다.
넘어야 할 벽은 있다. 1400만원대에 달하는 초기 설치비는 현재 70%의 보조금이 있어 부담을 낮출 수 있지만 지원이 줄면 소비자가 감당해야 할 금액이 커진다.
아파트 보급도 숙제다. 300리터급 물탱크는 물을 채우면 약 400kg에 달한다. 기존 공동주택은 하중과 설치 공간, 배관 등을 함께 따져야 해 신축이나 재건축·재개발 단계에서부터 반영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신 상무는 "유럽은 우리보다 5년 정도 먼저 히트펌프 시장이 형성됐다"며 "한국도 탈탄소 정책에 맞춰 공동주택까지 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 주거환경에 특화된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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