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인공지능(AI)발 메모리 공급 부족이 장기화하면서 메모리 업체와 고객 간 거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메모리 빅3'인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고객이 최대 5년간 구매 물량을 보장하고 임의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새로운 장기공급계약을 도입했다. 가격 하한까지 설정해 장기 투자에 필요한 수익성도 확보한다는 설명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10일(현지시간) 미국 유타주 디어밸리에서 열린 '키뱅크 캐피털 마켓 테크놀로지 리더십 포럼'에서 전략적 고객 계약(SCA)의 구체적인 조건을 공개했다.
메흐로트라 회장은 기존 장기공급계약(LTA)에 대해 "사실상 잘못 붙여진 이름"이라며 "장기적이라고 할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기존 LTA는 12개월짜리에 불과했고 구매를 강제할 구속력도 없어 사실상 고객과의 '악수로 하는 합의'였다는 설명이다.
SCA는 다르다. 자동차 등 일부 고객은 3년이지만 대부분은 오는 2030년 말까지 약 5년간 이어진다. '테이크 오어 페이(Take-or-Pay)' 방식으로 고객은 약정 물량을 구매해야 하며 가져가지 않아도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메흐로트라 회장은 "고객들이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약상 탈출 조항이 없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론이 지난 6월 공개한 SCA는 16건이다. 현금 선수금과 현금성 약정은 220억달러로 이 가운데 180억달러가 현금이다.
가격도 미리 범위를 정한다. 일부 계약은 시장가격에 연동하지만 대부분은 상한과 하한을 두는 가격 밴드를 적용한다.
특히 메흐로트라 회장은 가격 하한에서 확보되는 매출총이익 수준이 "업계 사이클에서 과거 어떤 정점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장기 설비투자에서 높은 투자수익률(ROI)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객이 이처럼 강한 조건을 받아들이는 배경에는 AI발 메모리 공급 부족이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AI 메모리 수요가 급증했지만 반도체 생산능력은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고객 입장에서는 가격뿐 아니라 필요한 시점에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며 "HBM 등 AI 메모리가 복잡해진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의 차세대 AI 가속기 설계 단계부터 메모리 업체가 참여하고 개발·인증·양산까지 수년간 협력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메흐로트라 회장은 SCA를 통해 "연구개발(R&D)과 제품 로드맵에서도 고객들과 매우 심도 있는 협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계약 확대는 마이크론에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주요 고객과 장기공급계약을 확대하고 있다.
안정적인 물량을 선점하려는 고객과 대규모 투자에 앞서 장기 수요를 확보하려는 메모리 업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AI가 메모리 수요뿐 아니라 업계의 거래 관행까지 바꾸고 있는 셈이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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