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창재 기자] 딸이 수도 없이 달렸던 100m. 관중석에서 바라볼 때는 그저 짧은 거리였다. 아빠가 직접 출발선에 서고 나서야 그 100m가 결코 짧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육상선수인 딸이 얼마나 힘든 길을 달리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고 싶었던 아버지가 직접 유니폼을 입고 트랙에 섰다.

주인공은 경명여자중학교 1학년 육상선수 임예서의 아버지 임형근(46)씨다.
임씨는 지난 22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대구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WMAC대구2026) 남자 M45 100m 예선에 출전했다.
기록은 13초28.
하지만 이날 임씨에게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달린 100m의 목적지는 결승선이 아니라 딸의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임씨의 딸 임예서는 이미 한국 육상계가 주목하는 유망주다.
유가초등학교 6학년이던 지난해 제54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100m와 200m, 400m 계주를 석권하며 3관왕에 올랐다. 대회 최우수선수에도 선정됐다.
아버지는 그동안 딸의 훈련과 경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훈련도, 기록을 단 몇 초 아니 0.1초라도 줄이기 위해 반복하는 연습도 봤다.
그러나 바라보는 것과 직접 달리는 것은 달랐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딸이 늘 그랬듯 출발선에 섰다.
스타팅 신호를 기다렸고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들과 함께 트랙을 달렸다. 그리고 13초28 뒤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 짧은 시간이 아버지에게는 딸이 흘려온 땀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임씨는 “평소에는 예서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하고 있구나’라고만 생각했다”며 “직접 대회에 참가해 보니 짧은 100m를 위해 선수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땀을 흘리고 반복해서 훈련하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육상 경기에 참가한 경험이 아니라 딸의 노력과 열정을 아빠의 눈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트랙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딸에게 전했다.
“예서야, 아빠는 네가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이제 조금 더 잘 알 것 같다.”
이어 “기록이나 순위보다 지금처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달려가는 네 모습을 항상 응원할게”라고 했다.
어쩌면 육상선수에게 100m는 가장 짧은 경기 중 하나다.
하지만 이날 대구스타디움에서 임형근씨가 달린 100m는 달랐다.
딸이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 아버지가 46세에 처음 건너본 100m였고, ‘힘내라’는 말 대신 함께 뛰어보며 건넨 응원이었다.
경기를 마친 임씨는 같은 조에서 경쟁한 세계 각국의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서로의 완주와 도전을 축하했다.

35세 이상 선수들이 5세 단위 연령별로 출전하는 세계마스터즈육상경기대회는 세계 정상급 기록만을 겨루는 무대가 아니다. 나이와 국적을 넘어 저마다의 사연과 목표를 품고 다시 출발선에 설 수 있다는 것이 마스터즈 스포츠의 또 다른 가치다.
이번 대회에서 임씨가 보여준 도전도 그중 하나다.
소년체전 3관왕 딸은 기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아빠는 그런 딸의 마음을 알기 위해 달렸다.
그리고 13초28의 짧은 질주가 끝난 뒤 아버지는 비로소 알게 됐다.
딸이 달려온 100m는 결코 100m만의 길이 아니었다는 것을.
/대구=이창재 기자(lcj12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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