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원인 유전자만 12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공통된 분자적 특징이 드러났다.
복잡한 자폐의 유전적 다양성을 하나의 ‘분자 지도’ 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유전적 원인을 공통된 분자적 특징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연구 틀이 제시된 만큼 자폐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자폐 작동원리와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치료 전략을 더 정교하게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국내 연구팀이 자폐의 ‘분자 지도’를 정리했다. 새로운 치료 전략이 나올 수 있을 것인지 눈길을 끈다. [사진=IBS]](https://image.inews24.com/v1/b56a4c5c7fc760.jpg)
과학기술정보통신부(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배경훈)는 기초과학연구원(원장 장석복, 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 김은준 단장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원장 이식, KISTI) 디지털바이오컴퓨팅연구단 공동 연구팀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위험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생쥐 모델을 분석했다. 다양한 유전자 변이가 두 가지 상반된 전사체 상태(유전자 활성 상태)로 수렴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어려움, 제한적이고 반복적 행동 등을 특징으로 하는 대표적 신경 발달 질환이다. 그동안 다양한 유전적 원인이 보고됐는데 그간의 연구는 특정 유전자나 소수 동물 모델의 개별적 분석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서로 다른 연구를 비교·통합할 수 있는 체계가 없었다. 자폐가 어떠한 공통적 생물학적 원리를 통해 질환으로 이어지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시냅스 기능, 유전자 발현 조절, 세포 내 신호 전달 등 서로 다른 생물학적 기능에 관여하는 자폐 위험 유전자 17종을 선정해 각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생쥐 모델을 수년에 걸쳐 구축했다. 이후 총 1008개의 뇌 전전두엽 RNA 시퀀싱 데이터를 분석해 뇌 전체의 유전자 발현 양상을 종합적으로 비교했다.
분석 결과 서로 다른 유전자 변이를 가진 생쥐들은 변이 유전자의 종류와 관계없이 두 가지 공통된 전사체 상태로 수렴했다.
먼저 그룹1은 신경세포 간 신호 전달을 담당하는 시냅스 유전자 발현은 감소한 반면 유전자 발현 조절 유전자와 RNA 가공 유전자의 발현은 증가했다. 이와 반대로 그룹2는 시냅스 유전자 발현이 증가하고 유전자 발현 조절과 RNA 가공 관련 유전자 발현이 감소했다. 발병 원인이 되는 유전자는 다르더라도 분자 수준에서는 유전자 발현이 두 가지 일정한 패턴으로 나타난 것이다.
두 그룹은 약물 반응성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항우울제인 ‘플루옥세틴’과 기분안정제인 ‘리튬’을 각각 투여한 결과 그룹1은 약물 투여 후 여러 유전자의 분자적 이상이 일관되게 회복됐다. 그룹2에서는 유전자마다 반응이 달라 같은 약물에도 일정한 회복 양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환자의 유전자 분자 상태에 따라 같은 치료제에 대한 반응이 달라질 수 있음을 뜻한다. 앞으로 환자 맞춤형 정밀 치료 연구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단일핵 RNA 시퀀싱(약 100만개 세포핵을 개별 분석), 유전자 상호 연관성 분석 등 다양한 정밀 분석법을 동원해 이번 결과를 추가 검증했다. 그 결과 동일한 분자 패턴이 일관되게 확인됐을 뿐만 아니라 추가 자폐 생쥐 모델과 실제 자폐 환자의 뇌 전사체 데이터에서도 유사한 분자패턴이 관찰됐다.
이로써 두 가지 전사체 상태가 특정 유전자나 동물 모델에 국한되지 않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보편적 분자 특성임을 입증했다.
김은준 IBS 연구단장은 “자폐는 원인 유전자가 매우 다양해 개별 유전자 연구만으로는 공통의 발병 원리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다양한 유전적 원인을 공통된 분자적 특징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연구 틀이 제시된 만큼 자폐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를 주도한 배미현 IBS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로 자폐 치료 후보 물질에 대한 비교・평가 연구가 보다 체계화될 것”이라며 “앞으로 인간 유래 세포 등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해 자폐 작동원리와 새로운 치료 전략을 보다 정교하게 연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실장은 “대규모 생명 연구 자원 축적과 첨단 데이터 분석 역량을 연계해 이뤄낸 의미 있는 성과”라고 평가한 뒤 “난치성 질환 극복을 위해 생명 현상에 대한 근본 원리 규명과 첨단 바이오 연구를 꾸준히 지원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연구 결과(논문명: Transcriptome-based grouping and drug-response assessment in mice with ASD-risk mutations)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18일자로 실렸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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