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논의하기 위한 미국·중국·러시아 3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정작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제외됐다. 러시아가 강대국 간 협상을 통해 자국에 유리한 종전 조건을 관철하려는 구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EPA/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66854054779e69.jpg)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여하는 3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러시아는 내달 18~19일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회담 가능성을 논의 중이라고 확인했다. 다만 개최 여부와 구체적인 의제는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협상에 적극적인 만큼, 회담에 응할 여지가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신중한 모습이다. WSJ는 러시아와 중국 협상 사정에 밝은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 참여를 전제로 회담에 반대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 빠진 종전 협상…러시아 셈법은
이번 회담 구상에는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빠졌다. 미국·중국·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와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이다.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우크라이나가 합의안을 수용할지는 별개 문제다. 미국·중국·러시아가 종전 조건을 먼저 논의한 뒤 우크라이나에 합의 수용을 압박하는 구도로 이어질 수 있다.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요구해왔다. 우크라이나가 통제하고 있는 지역까지 넘겨받겠다는 입장이다. 로이터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가 아직 장악하지 못한 돈바스 지역 약 11%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추가 영토 양도를 거부하고 있다.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전투를 중단하는 방안에는 협상 여지를 남겨뒀지만, 양측 입장 차가 크다.
종전 협상에서는 현재 전선을 기준으로 전투를 중단하는 문제와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공식 인정하는 문제가 핵심 쟁점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가 점령지에 대한 국제사회 인정까지 염두에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휴전을 넘어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로 공식 인정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미국·중국과 먼저 종전 조건을 논의하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우크라이나가 거부해온 영토 양보 문제를 강대국 간 협상으로 끌어올려 외교적 압박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美 중간선거 앞두고⋯러시아에 유리해진 협상 환경
푸틴 대통령이 3자 회담을 제안한 배경에는 미국의 달라진 태도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EPA/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63eb09ada770ee.jpg)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우크라이나 종전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신속한 합의를 원한다는 점을 활용해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러 관계도 개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산 경유 거래에 합의했다. 16일에는 러시아에 대한 일부 제재를 유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경제적 유인으로 러시아를 종전 협상에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압박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제재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향해서는 종전 협상에 협조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군사 지원도 압박 수단이다. 미국은 최근 일시 중단했던 우크라이나와 정보 공유를 재개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 군사 정보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지원 중단 여부가 협상에서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2의 얄타회담'⋯종전 넘어 강대국 질서 재편 노려
푸틴 대통령이 추진하는 3자 정상회담에는 우크라이나 종전을 넘어 국제질서 재편에 참여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WSJ는 러시아 전직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이번 회담을 '제2의 얄타회담'으로 확대하려 한다고 전했다.
얄타회담은 1945년 미국·영국·소련 정상이 전후 유럽 질서와 독일 처리 문제를 논의한 회의다. 강대국들이 전후 질서 형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례다.
푸틴 대통령도 미국·중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유럽 안보 문제를 논의하며 러시아의 강대국 지위를 부각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제재와 외교적 고립에 직면했다. 그러나 미국·중국과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던 서방 전략이 흔들렸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문제는 유럽이 빠졌다는 점이다.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군사·재정 지원을 제공, 러시아 제재에도 참여해왔다. 종전이 합의되더라도 제재 해제와 안보 보장에는 유럽 협력이 필수적이다.
유럽연합(EU) 정상들은 지난 15~16일 회의에서 대러 제재 강화 방침을 재확인하고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중국도 계산 복잡⋯중재국 위상과 유럽 시장 사이
중국도 3자 회담을 외교적 영향력을 높일 기회로 보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이 개입하면서 유럽과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윈 쑨 중국 프로그램 국장은 중국이 강대국 간 외교 중심축이자 미국·러시아를 중재하는 국가로 인정받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EPA/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49cbc9ebdddd89.jpg)
중국 내부에서는 회담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WSJ는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부각되면 중국이 APEC을 통해 보여주려는 지역 외교 성과가 가려질 수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과제다. 그레구아르 루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Chatham House) 국장은 "중국이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 맞서는 러시아를 중요한 협력국으로 여기지만, 푸틴 대통령의 결정에 끌려다니지는 않으려 한다"고 짚었다.
한편, 실제 EU는 러시아 군수산업 지원 등에 관여한 중국 기업들을 제재하고 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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