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현동 기자] 정부가 단일 법률로는 역대 최대인 320여개 규제특례를 담은 '초광역특구법' 제정을 추진한다. 지방정부와 기업이 신청하면 규제특례를 메뉴판처럼 골라 적용받는 방식이다. 로봇·반도체·AI데이터센터·자율주행차·바이오 분야 규제 정비 과제도 함께 내놨다.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등의 노동특례는 사회적 대화 결과를 반영해 국회에서 논의한다. 다만 320여개 특례 가운데 새로 생기는 특례가 몇 개인지는 정부도 집계하지 않았다. 법률을 고쳐야 하는 과제는 대부분 내년 상반기까지 개정안을 마련하는 단계다.
정부는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 주재로 규제합리화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를 열었다. 국무총리와 민간 부위원장 3명, 위원, 현장 전문가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4월 15일 1차 회의 이후 6개월 만이다. 김용수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전날 사전 브리핑에서 “1차 회의 시 논의된 사항을 구체화하는 한편, 체감도 높은 성과 창출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회의의 중심은 초광역특구다. 법안의 정식 명칭은 '지방주도성장을 위한 초광역권 전략산업특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다. 정부가 '메가특구'로 부르던 것을 법정 용어로 바꿨다.
지방정부와 기업이 특구계획을 세워 신청하면 규제합리화위원회가 규제특례를, 지방시대위원회가 전체 특구계획을 심의한다. 국무총리 승인을 거쳐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정한다.
특구에는 세 가지 규제 완화 장치가 적용된다. 먼저 320여개 '메뉴판식 규제특례'다. 인허가 의제와 환경영향평가 단축, 산업시설 건폐율·용적률 완화, 기업 종사자 주택 특별분양 같은 공통 특례와 산업별 특례로 나뉜다. 메뉴판에 없는 규제도 신청하면 일정 기간 효력을 배제하거나 완화하는 '수요응답형 규제유예'를 처음 도입한다. 규제샌드박스는 심의 기간을 줄이고 실증 기간을 유연하게 운영한다. 성장엔진특별보조금 신설, 국민성장펀드 지방 투자, 거점국립대 '성장엔진 브랜드 단과대' 설치 같은 재정·금융·인재 지원도 묶는다.
정부는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손동균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은 "법 발의만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시행령 제정 과정, 지방·기업과 협의는 계속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며 "적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권역별로 1개씩은 지정하는 걸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8월 5극3특 권역별 성장엔진 25개를 발표했다.
320여개 특례 가운데 기존 특구에 없던 새 특례가 몇 개인지는 밝히지 못했다. 손 실장은 관련 질문에 "기본적으로 대부분 신규 특례 중심이라고 보면 되고, 기존 특례에서 +α되는 부분도 있다"며 "중복되는 부분은 정확히 카운팅은 안 했다"고 답했다.
손 실장은 "새로운 거라고 말씀을 올리는 것보다는 관련 부처에서 줄 수 있는 모든 특례는 다 포함됐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연구개발특구, 규제자유특구, 기회발전특구 등 부처별로 흩어진 특구의 특례를 한 법에 모은 성격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노동특례는 이번 회의 안건에서 빠졌다. 고용노동부도 브리핑에 나오지 않았다. 손 실장은 "노동특례가 포함된 초광역특구법과 그렇지 않은 게 이틀간 발의돼 국회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사회적 대화에서 논의된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든 대표 특례는 세 가지다. 연구개발(R&D) 상위 3% 인력에 대한 특례,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3개월→6개월),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확대(2년→4년)다.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에서 논의 중이다.
산업별 과제는 1차 회의에서 대통령이 제시한 '경쟁국 수준의 규제합리화' 원칙에 따라 마련됐다.
반도체는 산업단지 조성 기간 단축이 핵심이다. 인허가·보상·설계를 순차적으로 진행하던 것을 동시에 추진하는 패스트트랙을 적용해 10년 이상 걸리던 조성 기간을 5년 이내로 줄인다. 관련 '산업입지법' 개정안은 7월 발의됐다. 공정용 고압가스는 서로 반응하지 않는 가스의 혼합보관을 허용하고, 실린더 캐비닛 설치 허가를 일괄 처리하는 특례고시를 내년 1월 만든다. 공항·항만이 먼 지방 보세공장은 물품을 먼저 운송하고 이동 중에 수출신고를 할 수 있다. 공사용 외국 장비 세금 납부 유예, 반도체 테스트베드 출연재산 증여세 비과세 특례도 추진한다. 안홍상 산업통상부 반도체정책과장은 "대통령께서도 '전격전'이라는 표현을 쓰셨듯이 최근 반도체 경쟁은 시간의 싸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AI데이터센터는 AI데이터센터특별법을 근거로 흩어진 인허가를 일괄 처리하고 타임아웃제를 도입한다. 전력에 여유가 있는 비수도권은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일부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전산실과 냉각·전력설비 같은 무인 설비는 주차장 설치 기준 면적에서 빼 건축 규제를 최대 3분의 1 수준으로 낮춘다. 내년부터는 국산 장비를 실증할 수 있는 AI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로봇은 이동식 산업용 로봇의 울타리 설치 면제 요건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내년 1분기에, 휴머노이드 안전 가이드를 연내에 내놓는다. 4족 보행로봇처럼 바퀴가 없는 실외이동로봇의 운행안전 인증 체계도 만든다.
자율주행차는 정식 판매 길이 열린다. 국제기준을 도입하기 전까지 기업 간 거래(B2B)에 성능인증제를 적용하고, 세부 고시는 다음 달 제정한다. 무인 자율차의 원격관제와 사고 대응을 맡는 '자율주행 서비스' 사업자 제도도 만든다. 택시업계와 상생 방안·지분 참여를 먼저 협의한 뒤 2028년 광주 실증도시에서 시범 적용한다.
바이오는 배양한 자가면역세포를 활용한 재생의료의 위험도를 중위험에서 저위험으로 낮춰 2~3년 걸리던 임상연구 없이 치료할 수 있게 했다. 이 조치는 6월 심의위원회를 통과해 이달 시행된다. 다른 기관이 채취·보관한 제대혈이나 배아줄기세포 등도 재생의료 원료세포로 쓸 수 있게 '첨단재생바이오법'을 내년 상반기 개정한다.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처리한 의료정보 연구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를 생략하고, 이미 수집한 의료 데이터의 2차 활용에는 포괄 동의를 도입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AI를 활용한 의약품의 심사 가이드라인을 12월 마련한다. 그동안 품목허가 전에 만든 의약품은 전량 폐기해야 했지만, 제조·품질관리 기준을 지키고 최종 허가 사항과 같게 만든 경우 판매를 허용한다.
2부에서는 창업 규제를 다뤘다. 정부는 창업기업이 인허가나 정책지원을 신청할 때 내야 하는 행정서류 5021개 가운데 2756개(54.9%)를 폐지·면제·간소화한다고 밝혔다. 이 수치에는 '기존 행정정보 공동이용 서류'가 포함됐다. 이미 행정기관끼리 확인할 수 있던 서류가 몇 개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병역이나 출산으로 경영을 쉰 기간은 현행 업력 7년 기준에 더해 최대 5년까지 창업 지원을 받을 수 있게 '중소기업창업법'을 고친다. 신설 법인 계좌의 이체 한도 제한은 은행 공동 가이드라인으로 해제 요건을 통일하고, 중기부 창업지원사업 선정 이력이 있으면 신청 즉시 풀어주기로 했다. 재창업자를 지원하는 성실경영평가는 전 부처로 넓히고, 규제합리화위원회 산하에 '창업벤처규제혁신위원회'를 새로 둔다.
이번 과제의 상당수는 가이드라인이나 고시를 고치는 행정 조치다. 법률을 바꿔야 하는 과제는 아직 초기 단계다. 자율차의 시범운행지구 밖 운행 허용은 12월 개정안 마련이 목표다. 무인 자율차 안전관리 법체계, 자율주행 서비스 제도화, 데이터 보안 의무화는 내년 상반기에 개정안을 만든다. '첨단재생바이오법'과 '중소기업창업법' 개정도 내년 상반기 목표다. 반도체 산단 패스트트랙과 초광역특구법은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정부는 법 시행 전이라도 국조실 민관합동 규제합리화추진단, 20일 출범한 산업부 반도체혁신성장지원단 등 분야별 소통채널로 현장 규제 애로를 즉시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김현동 기자(citizenk@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