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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삼성전자 위기와 칠면조의 교훈


[아이뉴스24 이균성 기자] 저서 ‘블랙스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그의 잇따른 저작에서 칠면조를 반면교사로 삼는다. 길러지는 칠면조는 결국 기르는 사람에 의해 잡아 먹힌다. 그게 길러지는 칠면조의 운명이다. 하지만 칠면조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살아있는 동안 주는 먹이를 즐겁게 먹으며 자신을 살찌운다.

나심 탈레브가 보기에는 칠면조의 운명만 그런 게 아니다. 인간이 만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주체가 칠면조의 운명을 피하기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인간이 인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는 미래를 근본적으로 예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의 문제만 남을 뿐 모든 주체는 결국 칠면조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병철(왼쪽부터) 삼성그룹 창업회장, 이건희 선대회장, 이재용 회장. [사진=삼성전자]
이병철(왼쪽부터) 삼성그룹 창업회장, 이건희 선대회장, 이재용 회장. [사진=삼성전자]

나심 탈레브는 이런 세상을 ‘극단의 왕국’이라 표현했다. 이 왕국은 인간이 살기를 희망할지도 모르는 ‘평범의 왕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평범의 왕국’에서 통용되던 모든 지식과 정보 혹은 가치와 이념이 작동되지 않는 세계가 ‘극단의 왕국’이다. 어느 순간(칠면조가 잡아 먹히는 그날)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탈레브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 계기가 되는 그것을 ‘검은 백조’ 즉 ‘블랙스완(Black Swan)’이라 불렀다. 영어는 좀 다르겠지만 한글로 검은 백조는 그 자체로 형용 모순이다. 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있기는 있지만 있는 줄을 알아채기가 매우 어렵고 그래서 대부분에게는 사전에 안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 그것이다.

투자 전문가였다가 대학자가 된 탈레브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의 지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다수의 책을 출간했지만 그의 통찰은 단지 주식시장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거대한 위기론에 휩싸여 있는 삼성전자의 모든 주체가 귀담아들을 만한 통찰이 담겨 있다.

삼성전자의 오랜 캐치프레이즈는 ‘초격차(超格差)’였다. 삼성 반도체의 신화를 써온 주역 중 한 명인 권오현 전 회장은 지난 2018년에 ‘초격차, 넘볼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격’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삼성이 오랜 세월 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를 해온 기업인 만큼 누구라도 충분히 인정할 만한 캐치프레이즈라고 할 수 있다.

초격차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격(格)’이다. 단지 추종자들과의 격차(隔差)을 벌리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격(格)을 달리하는 존재가 되겠다는 뜻이다. 그 앞에 ‘초(超)’까지 덧붙였다. 싸움의 판을 달리해 추격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냥 초격차(超隔差)가 아니라 초격차(超格差)란 조어를 만든 진정한 의미다.

현실은 어떤가. 격(格)을 달리하기는커녕 그동안 있던 격차(隔差)마저 좁혀지다 결국엔 추격자한테 역전까지 당한 상황이 됐다. 인공지능 때문에 요새 유행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 시장 1위 자리를 넘겨준 게 대표적이다. 왜 그렇게 됐는가. 다양한 분석이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것처럼 메모리 사업을 이끄는 담당 임원들이 시장을 보는 중장기 전략에서 오판한 것이 이유일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낭만적 희망도 대표적인 지적 사안이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는 모두 반도체 영역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로 경쟁력 요소가 다른데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낭만적 희망에 매몰돼 부실한 계획을 짰다는 게 지적의 요체다. 그 결과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와의 차이는 삼성의 희망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좁혀지기는커녕 그야말로 초격차(超隔差)가 되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이런 이유는 대체적으로 그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지적은 하나하나 중요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지엽적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꼭 그것이 아니라도 삼성의 위기는 불가피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탈레브 방식으로 말하면 삼성은 이미 칠면조가 되어버린 거다.

왜 칠면조라 하는가. 두 가지만 들겠다. 첫째, 행운을 실력으로 착각한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삼성이 최근에 메모리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면, 그건 과거(선대 회장과 선배 임직원의 노력 및 당시 시장 환경) 유산 덕이다. 그 유산은 칠면조의 먹이와 같은 것이다. 둘째, 삼성이 메모리 분야 세계 최고인 만큼 누구보다 잘 안다는 착각을 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이들은 대개 ‘블랙스완’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칠면조의 운명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삼성과 반대로 하면 된다. 행운에 속지 말아야 하고, 알 수 없는 것(블랙스완)을 알기 위해 남다른 시선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스스로 블랙스완이 되면 더 좋다. 스마트폰을 대중화한 애플이나 챗GPT를 내놓은 오픈AI, 그것에 대비한 엔비디아가 블랙스완에 가깝다. 삼성은 지난 십수 년 동안 애플을 상대하며 곤욕을 치러봤지만 애플과 같은 블랙스완의 면모를 갖추기보다 주는 먹이에 덩치만 커진 칠면조에 가까운 존재가 됐다는 게 진짜 삼성 문제다.

나는 칠면조인가, 블랙스완인가. 이재용 회장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삼성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균성 기자(seren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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