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한국 도로 위에 미국산 자동차의 '핸즈프리' 자율주행 기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테슬라가 세계 7번째로 FSD(Full Self Driving) 서비스를 한국에 출시했고, GM도 캐딜락의 프리미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에스컬레이드 IQ'를 시작으로 '슈퍼크루즈'를 내놓았다.

이들 주행 기술은 운전자가 손을 놓고 주행할 수 있지만, 완전자율주행이 아니다. 국제 기준으로는 '레벨 2++' 수준으로, 운전자는 여전히 전방을 주시해야 하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능들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사실상 '죽은 줄 알았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있다.
한미 FTA에는 자동차 분야 비관세 장벽을 줄이기 위한 규정이 포함돼 있다. 특히 기술 비차별 원칙에 따라, 미국에서 허용된 안전·환경·기술 기준을 한국이 임의로 금지하거나 차별할 수 없다. 미국 안전기준(FMVSS)을 충족하면, 연간 5만 대까지 국내 안전기준 인증을 면제받아 복잡한 인증 절차 없이 첨단 자율주행 기능을 국내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다.
이 조항은 원래 미국산 자동차의 수출 확대를 위한 장치였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산 차량의 자율주행 기능이 국내 규제를 우회해 도입되는 법적 근거가 됐다. 반면 국내 기업은 동일한 기능을 상용화하려면 국토교통부의 까다로운 임시운행허가, 제한된 시험 구역, 보험·안전 요건 충족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은 동일한 기술을 시험조차 하기 어려운 '역차별' 구조에 놓여 있다. 미국산은 FTA 덕분에 바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지만, 국산은 규제에 묶여 상용화 속도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테슬라와 GM이 FTA 조항을 활용해 국내 시장에 먼저 진입해 핸즈프리 등 첨단 기능을 선보이며 국내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다. 현대차·기아 등 국내 기업들도 유사한 기술을 개발했지만, 인증과 규제 문제로 상용화가 늦어지는 현실이다. 이 때문에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자율주행 분야에서 시장 주도권을 외국계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도 최근 '자율주행차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2027년까지 '레벨4'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목표로 △자율주행 실증도시 조성 △임시운행허가 제도 개선 △교통취약지역 자율주행 버스 확대 △연구개발(R&D) 데이터 활용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국내 기업이 미국산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발판이다.
그러나 미국산 자동차들이 상용화를 본격화하고, 실제 도로에서 운행하면서 막대한 현장 데이터를 확보하는 가운데 실제 상용화가 늦어지면 그만큼 기술적으로 뒤처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테슬라와 GM이 '핸즈프리' 기능을 국내 도입하기 시작한 시점에 공교롭게도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자율주행 연구개발을 주도했던 송창현 AVP 본부장이 사임했다. 그룹의 사장단 인사가 임박한 시점에 자율주행 등 미래차 R&D 조직의 대대적인 변화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해 "저희(현대차)가 좀 늦은 편이 있고, 중국 업체나 테슬라가 잘하고 있기 때문에 격차는 조금 있을 수 있다"면서도 "격차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기 때문에 안전에 좀 더 초점을 맞추려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신중론'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자율주행 기술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산업경쟁력 측면에서 우려도 나온다.
자율주행과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규제 혁신'은 필수다. 안전을 등한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일한 기술에 대해 외국 경쟁사와 국내 업체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은 정부의 역할 중 하나다. 새로운 기술을 신속히 시험하고, 상용화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
자율주행은 단순한 편의 기능을 넘어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 기술이다. 한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죽은 줄 알았던' 한미 FTA가 던진 역설을 교훈 삼아 국내 규제 체계 혁신을 미룰 수 없다.
/김종성 기자(star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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