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우리는 많은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은 경험을 한다. 맛있었던 맛집과 그렇지 않은 음식점의 위치를 선별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간직한 장소와 안 좋은 일을 겪었던 장소 역시 선별적으로 기억 속에 저장할 수 있다. 이러한 기억들은 모두 미래 행동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특정 위치, 그 위치의 좋고 나쁨, 즉 가치(value)를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뇌의 해마(hippocampus)가 정상적 기능을 해야만 가능하다.
해마의 장소세포(place cell)가 위치를 기억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규명해 2014년에 존오키프 박사가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가 수면을 취하는 동안 수면 전에 학습한 정보를 해마의 세포들이 다시 재생(replay) 혹은 재활성화(reactivation)하면서 기억을 공고하게 다진다는 것 역시 그동안 알려진 과학적 사실이다.
그 이후로 아쉽게도 해마의 세포들이 어떻게 특정 장소와 결합된 ‘가치(value)’를 정보화해 기억하고 다시 필요할 때 제때 인출하는 지에 대한 뇌과학적 설명은 지금까지 부족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의 뇌인지과학과 이인아 교수 연구팀은 가치가 다른 서로 다른 장소를 기억하는 학습을 한 쥐의 해마의 장소세포를 측정한 결과, 쥐가 잠을 자거나 멍하니 있는 동안 해마의 중간 부분에 존재하는 ‘장소세포(place cell)’들이 가치가 높은 장소에 대한 기억을 선택적으로 재생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가치 있는 장소를 기억하는 데 핵심적 작동 원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중간 해마가 특정 장소에서만 활동하는 장소세포를 가질 뿐만 아니라, 가치 정보를 처리하는 편도체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동안 해마 연구는 해마의 모든 하위 영역은 기능들이 비슷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관측이 쉬운 배측(dorsal) 해마에만 오로지 집중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연구팀은 중간 해마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인아 교수 연구팀은 중간 해마의 장소세포가 공간의 가치를 표상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쥐를 대상으로 가치 기반 미로학습 과제를 학습시키고 고밀도 전기생리학을 이용해 배측 해마와 중간 해마의 신경세포 활동을 동시에 기록해 비교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쥐가 미로학습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중간 해마에서 높은 가치와 낮은 가치의 장소를 표상하는 서로 다른 장소세포를 발견했다. 해마의 뾰족물결파 뇌파와 함께 세포의 활동을 측정했다.
수면할 때 나타나는 뾰족물결파 구간 동안 재활성화되는 장소세포를 분석한 결과, 중간 해마에서는 높은 가치의 장소를 표상하는 장소세포가 낮은 가치의 장소를 표상하는 장소세포보다 훨씬 더 많이 재활성화됐다.
배측 해마에서 일어나는 장소세포의 재활성화는 이러한 장소의 가치와 무관했다.
연구팀은 가치 기반 미로학습 과제 직후 잠을 자는 동안 동일한 장소세포의 활동을 살펴봤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해마의 리플 구간 동안 높은 가치의 장소를 표상하는 장소세포는 다른 장소세포보다 재활성화 빈도가 높았다.
특히, 높은 가치를 표상하는 장소세포의 재활성화가 수면할 때 많이 발생할수록 다음 날 쥐의 미로학습 과제의 학습 속도가 빨라짐을 확인했다.
이는 잠을 자는 동안 이 장소세포의 재활성화를 통해 장소의 가치 정보가 응고화(consolidation) 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인아 교수는 “이번 연구는 배측 해마 연구에 치우쳐진 해마 연구 이론의 편협함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가 있다”며 “우리가 왜 학습 이후 충분한 수면을 취하거나 학습한 것에 대해 고찰(reflection)하는 것이 기억에 중요한 것인지 뇌과학적 기전을 밝혔다는 데 특히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알츠하이머성 치매 등 해마의 기능 이상을 불러오는 퇴행성 뇌질환에 동반되는 학습과 기억 장애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뇌과학적 원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논문의 제 1저자인 진승우 박사는 “기존 학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중간 해마의 독자적 기능과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구”라며 “뇌에서 가치 정보가 학습과 기억을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차세대 인공지능에 접목시킴으로써 뇌의 신경망 작동 방식과 더욱 유사한 인공지능 개발에 원천 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논문명: Selective reactivation of value- and place-dependent information during sharp-wave ripples in the intermediate and dorsal hippocampus)는 결과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제 저널인 ‘Science Advances’에 실렸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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