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국내 연구팀이 심리적 공포기억을 조절하는 뇌 회로를 찾아냈다. 트라우마 치료의 새 길을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연재해, 사고, 폭력 등 위협적 상황은 뇌에 공포 기억을 남긴다. 지나치거나 왜곡된 공포 기억 형성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불안장애, 우울증 등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팀은 신체적 고통 없이 심리적 불안과 공포에 의한 공포 기억 형성에 특화된 뇌 회로를 알아냈다. 이 회로를 타깃으로 한 맞춤형 트라우마 치료법 개발 가능성을 열었다.
![시각 위협 자극은 신체적 고통을 유발하지는 않는데 정서적 고통 신호 경로를 통해 불안한 상태를 만들고 공포 기억을 형성했다. 정서적, 신체적 고통 위협 신호 전달 뇌신경회로. [사진=KAIST]](https://image.inews24.com/v1/594bdaa56c3249.jpg)
KAIST(이광형 총장)는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 연구팀이 생쥐 모델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감각적 고통 없이 심리적 위협만으로 유도되는 공포 기억의 형성을 조절하는 핵심 뇌 회로인 ‘pIC-PBN’ 회로를 규명했다고 15일 발표했다.
pIC–PBN 회로는 후측 대뇌섬엽(pIC, posterior insular cortex)에서 외측 팔곁핵(PBN, parabrachial nucleus)으로 이어지는 하향 신경 경로이다.
기존에는 뇌의 외측 팔곁핵(PBN)이 척수에서 통각 정보를 전달받는 통각 상행 경로의 일부로만 알려져 있었다. 연구팀은 비통각적 위협 자극에 의해서도 PBN이 공포학습에 필수적으로 기능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찾아냈다.
이번 연구는 ‘정서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이 서로 다른 뇌 신경회로에 의해 처리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실험적으로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정서적 고통을 전달하는 데 특화된 신경 회로(pIC-PBN)를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신경과학 분야에서 큰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의 제 1저자인 한준호 박사는 “저희 강아지 ‘레고’는 오토바이를 무서워하는데 실제로 부딪치진 않았음에도 그 이후로 오토바이 소리만 들어도 겁을 먹는다”며 “사람도 마찬가지로 사고를 실제로 겪지 않더라도 사고가 날 뻔한 경험이나 자극적 미디어 노출만으로도 공포 기억이 생기고 결국 PTSD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공포 기억에 관한 연구는 신체적 고통에 기반한 실험에 의존해 왔는데 실제 인간의 공포 기억은 신체적 고통보다는 심리적 위협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이러한 심리적 위협을 처리하는 뇌 회로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심리적 위협을 처리하는 뇌 회로를 알아보기 위해 전기 자극이 아닌 시각적 위협 자극을 사용하는 새로운 공포 조건화 실험 모델을 개발했다.
생쥐는 포식자가 위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공포 반응을 보이는데 연구팀은 이를 활용해 천장 화면에 빠르게 커지는 그림자를 제시함으로써 생쥐가 포식자에게 공격당하는 듯한 위협을 경험하게 했다.
이 실험을 통해 통각 없이도 심리적 위협만으로 공포 기억이 형성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 새로운 행동 실험 모델과 함께 연구팀은 신경세포의 활성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화학유전학과 광유전학 기법을 활용해 외측 팔곁핵(PBN)이 시각적 위협만으로도 공포 기억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PBN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상위 뇌 영역을 분석했다.
부정적 정서와 고통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후측 대뇌섬엽(pIC)이 PBN과 직접 연결돼 있음을 알아냈다.
시각적 위협 자극 이후 pIC에서 PBN으로 신호를 보내는 뉴런들이 활성화되며 이 신호가 PBN 뉴런의 활성에 필수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 결과 pIC–PBN 회로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시각적 위협에 따른 공포 기억 형성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선천적 공포 반응이나 통각 기반의 공포 학습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규명했다.
반대로 이 회로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는 것만으로도 공포 기억이 유도돼 pIC–PBN 회로가 심리적 위협 정보를 처리하고 학습을 유도하는 핵심 경로임이 드러났다.
한진희 교수는 “이번 연구는 PTSD,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정서적 고통을 주 증상으로 하는 정신질환의 발병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KAIST 생명과학과 한준호 박사(제 1저자), 서보인 박사과정(제 2저자)이 수행한 관련 연구 논문(논문명: A top-down insular cortex circuit crucial for non-nociceptive fear learning)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5월 9일 자 온라인으로 실렸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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