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구서윤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담합을 ‘암적 존재’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이후 정부의 담합 수사가 빠르게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밀가루와 설탕에 이어 계란, 음료, 과자, 돼지고기 등 서민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주요 식료품 시장 전반으로 조사 범위가 넓어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전분당 시장까지 수사 선상에 올랐다. 고공행진하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관련 제조업계는 초긴장 모드로 접어들었다.

검찰은 전분당 시장 과점 업체인 대상, 사조CPK, 삼양사, CJ제일제당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담합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지난 23일 검찰의 움직임이 가시화했다. 전분당은 전분을 산이나 당화효소로 가수분해해 얻은 당류를 기반으로 한 제품으로, 물엿과 과당, 올리고당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과자와 음료, 유제품 등 가공식품 전반에 널리 사용되는 핵심 원재료다.
조사가 본격화하자 업계는 선제적으로 가격 인하에 나섰다. 사조CPK는 지난 23일 옥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전분과 물엿, 과당 등 주요 품목의 가격을 3~5% 인하한다고 밝혔다. CJ제일제당도 일반 소비자용 전분당 제품 가격을 최대 5% 인하했다. CJ제일제당은 앞서 지난달에는 업소용 전분당 가격을 3~5% 내린 바 있다. 대상 역시 지난 13일 올리고당류 3종과 청정원 물엿 등 소비자용 제품 가격을 일괄 5% 인하했다.
업계는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정부의 시선을 의식한 대응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담합 조사 국면에서 자발적 가격 인하는 향후 제재 수위 산정 과정에서 완화 요소로 고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설탕 담합 조사 당시에도 일부 업체의 가격 인하 조치가 제재 판단 과정에서 반영된 바 있다.
공정위는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설탕 판매가격의 인상 시기와 폭 등을 합의한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3개 설탕 제조·판매 사업자에 대해 과징금 총 4083억원을 잠정 부과했다.
다만 정부의 시각은 업계와 온도차를 보인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3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어림짐작으로도 10% 이상은 내려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하며 현재의 인하 폭이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밀가루 업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B2B 밀가루 시장 점유율 88%를 차지하는 대선제분·대한제분·사조동아원·삼양사·삼화제분·CJ제일제당·한탑 등 7곳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에는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위법 사실과 제재 의견이 담겼으며, 최종 제재 수위는 전원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제분사는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약 6년간 판매 가격과 물량 배분을 반복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담합으로 영향을 받은 관련 매출액은 약 5조8000억원으로, 공정위는 이를 ‘매우 중대한 위법 행위’로 판단해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과징금 상한은 이론상 1조1600억원에 달한다. 이는 그간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최대 과징금(6개 LPG 공급회사의 부당한 공동행위·2010년·6천689억원)의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제분사 7곳은 심사보고서를 받은 날로부터 8주 이내에 서면 의견을 제출하고, 증거자료 열람·복사 신청 등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공정위는 밀가루 담합 사건이 민생 물가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방어권 보장 절차가 종료되는 대로 최대한 신속하게 전원회의를 열어 최종 판단을 내릴 계획이다.
밀가루 담합 조사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통상 담합 사건은 조사 착수부터 심사보고서 발송까지 1년 이상이 소요되지만, 이번 사건은 지난해 10월 조사에 착수한 지 약 4개월 반 만에 절차가 마무리됐다. 공정위는 전원회의 심의가 완료되지 않은 사건을 처음으로 공개 브리핑하기도 했다.

이처럼 빠르고 강도 높은 조사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정 경쟁 기조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최근 "시장 지배력을 악용한 담합 행위는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시장 신뢰를 훼손하며 국민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라고 언급하며 강경 대응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부의 담합 단속이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밀가루와 설탕, 전분당 등 주요 원재료 가격이 잇따라 인하됐고, 담합과 직접 관련이 없는 업체들까지 가격 인상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원가 부담이 큰 식품업계 전반으로 ‘눈치 보기’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먹거리 전반에 걸쳐 담합 조사가 이어지면서 업계가 전반적으로 몸을 낮추고 있다"며 "밀가루와 설탕, 전분당 가격이 내려가긴 했지만 원재료비와 인건비, 물류비가 오른 상황에서 가격을 내리기도, 올리기도 쉽지 않은 데다 자칫 주목을 받을 수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구서윤 기자(yuni2514@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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