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전다윗 기자] 가공식품 가격 정책을 두고 식품업계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밀가루·설탕 등 주요 원재료 가격 하락 이후 물가 안정에 동참하라는 정부의 압박이 점점 거세지는 상황이지만, 중동 사태 여파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되레 원가 부담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을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라면 판매대. [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8516535f8d6ede.jpg)
농림축산식품부는 5일 농심·오뚜기·삼양·팔도 등 라면 4사를 소집해 비공개 실무진 회의를 진행했다. 전날 CJ제일제당·사조대림·오뚜기·대상·동원F&B·롯데웰푸드 등 식용유 업체들과 만난 데 이어 라면 업체들까지 소환한 것이다. 향후 제과·제빵 등 다른 가공식품도 간담회를 열어 품목별 상황을 수시로 점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업종별로 시장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다만 밀가루·설탕 가격 인하 후 정부와 식품 업체가 처음 만나는 자리인 만큼, 업체 입장에선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해 달라는 압박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가격 담합 의혹 조사가 시작된 후 제분·제당업계가 선제적으로 공급가를 낮추기 시작하자, 정부는 이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가공식품 가격도 낮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밀가루와 설탕 가격이 하락한 만큼 가공식품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밀가루·설탕 가격 인하를 언급하며 "설탕을 쓰는 상품이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서 소비자는 혜택도 못 받고 공정위가 열심히 한 결과물을 업체들이 독식하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식품업계는 이러한 정부 기조에 보조를 맞추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밀가루와 설탕 등이 주요 원재료인 건 사실이지만, 제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다. 라면의 경우 많아야 10~20% 수준, 일부 과자 제품은 1% 미만에 불과하다. 반대로 물류·인건비 등 나머지 비용들은 여전히 상승하는 추세고, 고환율 부담이 지속되며 수입에 의존하는 원재료 부담 역시 증가세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어떠한 취지로 물가 안정을 요구하는지 공감은 하지만 상황이 너무 어렵다. 보폭을 맞추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상태"라며 "가격을 동결하기도 어려워 고민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중동 전반으로 확산되고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가격 인하가 아닌 인상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 유가·해상 운임·환율 등이 급등하며 수입에 의존하는 원재료 가격이 폭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정부 압박에 가격 인하를 고려하던 일부 업체들까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동 사태 이후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이 유명무실해질 것 같다"며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환율이 상승하는 흐름이 되면서 오히려 가격 인상을 생각할 시점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전다윗 기자(dav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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