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효정 기자] 한미약품이 제약바이오업계 역사상 단일후보 물질 최대규모 기술수출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데는 고(故) 임성기 회장의 R&D DNA를 물려받은 임주현 한미그룹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
대규모 기술수출로 한미약품의 저력을 재입증하면서 임 부회장의 리더십도 한층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경영권 분쟁 가운데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향후 한미그룹의 안정화에도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로슈(Roche)그룹의 자회사인 제넨텍(Genentech)과 비만 등 대사질환 치료를 위한 혁신 신약 후보물질 'HM17321(UCN2 유사체)'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제넨텍은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HM17321의 개발·제조·상업화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확보한다.
총 계약 규모는 마일스톤 등을 포함해 최대 약 23억달러(약 3조5000억원)에 달한다. 한미약품은 계약 선급금으로 1억9000만달러(약 2850억원)를 받을 예정이다. 이는 총 계약 규모의 약 8%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글로벌 라이선스 계약에서 계약금은 전체 계약 규모의 약 5% 내외 수준인데, 이번 거래는 계약금 비중이 약 8% 수준에 달한다"며 "아직 임상 1상 단계 자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한미의 비만 신약 뭐가 다르길래?
제넨텍이 임상 1상 후보물질을 겨냥해 한미약품과 선제적으로 계약한 배경은 분명하다. HM17321이 기존 비만 치료제를 넘어서는 물질이어서 로슈그룹이 선점하려는 의도다.
HM17321은 체중 감량과 근육 보존이 동시에 가능한 계열 내 최초 신약(First-in-Class)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다.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코르티코트로핀 방출인자 수용체 2형(CRF2)을 자극하는 비인크레틴 계열 UCN2(Urocortin-2) 유사체다.
이는 기존 비만 치료제의 효능을 넘어설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 GLP-1 기반의 인크레틴(incretin) 계열 비만 치료제는 유의미한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지만, 치료 과정에서 제지방량 감소가 동반된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사실상 지방은 빼고 근육은 지키는 새로운 개념의 비만 신약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셈이다.
"아버지 임성기 회장 뛰어넘었다"…임주현의 'H.O.P 프로젝트' 결실
특히 이번 기술수출은 2020년 타계한 임성기 선대회장의 성과를 뛰어넘는 결과다.
이번 계약은 한미약품이 2015년 사노피와 체결했던 39억유로(당시 약 5조원) 규모의 당뇨병 치료제 '퀀텀 프로젝트' 계약 이후 최대 규모다. 퀀텀 프로젝트는 당뇨 신약 후보물질 3개를 묶은 계약이었다.
이 성과 뒤에는 임 부회장의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있었다. 2023년 임 부회장은 'H.O.P(Hanmi Obesity Pipeline·한미 비만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당시 한미그룹은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때다. 그런 상황에서도 R&D 의지를 어느 때보다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H.O.P 프로젝트는 비만의 예방과 치료, 사후관리까지 포괄하는 맞춤형 치료제 포트폴리오를 키우는 것이다.
이미 선행 치료제가 있는 비만에서 기존 치료제를 보완하는 전략으로, 치료 단계별로 필요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나가는 전략이었다.
2023년 프로젝트 가동 당시 '한국인 맞춤형 GLP-1 비만 치료제' 개발을 표방하며 '에페글레나타이드', GLP-1·글루카곤·GIP 삼중작용제 'LA-GLP·GIP·GCG' 등 5개 후보물질을 포함시켰다.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면서 임 부회장은 꺼지지 않는 경영권 분쟁에서 한미그룹 내 리더십을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남아 있는 한미그룹은 신 회장 측과 오너 일가 측의 지분 싸움이 팽팽한 상황이다.
창업주 일가의 우호 지분은 37% 수준으로 우위를 보이고 있어 이번 기술수출 성과가 우호 지분 결집에 기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효정 기자(hyoj@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