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주택정비사업 시장에 '신탁바람'이 불고 있다. 일례로 재건축을 앞둔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경우 전체 14개단지 가운데 절반이 넘는 8곳이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복잡한 인허가와 자금조달을 전문 신탁사에 맡겨 사업속도를 높이려는 움직임이다.
다만 신탁보수에 따른 추가비용과 조합원 통제권 축소는 풀어야할 과제로 꼽힌다. 속도가 강점으로 꼽히는 신탁방식과 달리 목동에서 사업진도가 가장 빠른 곳은 조합방식을 택한 6단지라는 점도 신탁방식 실효성을 따져볼 대목이다.

3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목동신시가지 14개단지중 1·2·5·9·10·11·13·14단지 등 8곳은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해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3·4·6·7·8·12단지는 조합방식을 택했다.
단지별로는 우리자산신탁이 1단지, 하나자산신탁이 2·5단지, 한국자산신탁이 9·11단지 사업을 맡고 있다. 한국토지신탁은 10단지, 대신자산신탁은 13단지, KB부동산신탁은 14단지 사업시행자로 참여하고 있다.
신탁방식은 토지등소유자가 사업을 신탁사에 맡기고 신탁사가 사업시행자로 나서는 구조다. 신탁사가 인허가와 사업관리, 자금조달, 시공사선정 등 사업전반을 맡는다.
조합방식과 달리 전문사업자가 재건축을 주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조합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민간 갈등을 줄이고 복잡한 인허가와 사업절차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특히 목동처럼 14개 단지가 동시에 재건축을 진행하는 지역에서는 자금조달과 사업관리에 대한 부담이 큰 만큼 신탁사 자금운용 능력과 사업관리 경험을 활용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신탁방식이 반드시 '사업 지름길'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조합방식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비용인 신탁사 지급보수가 추가된다. 분양 규모가 수조원대에 달하는 매머드급 사업장 경우 신탁수수료가 단지당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 안팎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사업기간을 줄여 금융비용을 절감한다면 이를 상쇄할 수 있지만 사업이 지연되면 신탁보수가 고스란히 추가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
조합원이 사업전반에 행사할 수 있는 통제권이 줄어드는 점도 부담이다. 조합방식에서는 조합원이 조합을 구성해 총회 등을 거쳐 주요사안을 결정하지만 신탁방식에서는 신탁사가 사업전반을 주도한다. 사업속도와 전문성을 얻는 대신 사업과정에서 조합원 뜻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계로 지적된다.
실제 갈등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수도권 대표 신탁방식 재건축단지인 안양 진흥아파트나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과정에서 시공사선정과 공사비 산정 등을 둘러싸고 신탁사와 조합원간 갈등이 불거지거나 소송전으로 번지기도 했다.

특히 신탁방식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속도'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현재 14개단지가 재건축사업을 진행중인 목동 경우 사업진도가 가장 빠른 곳은 오히려 신탁방식이 아닌 조합방식을 택한 6단지다.
6단지는 14개단지 가운데 가장 먼저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패스트트랙을 적용 받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조합직접설립제도를 활용해 추진위원회 승인절차를 건너뛰면서 조합설립에 필요한 기간도 단축했다.
결국 사업방식 자체보다 정비구역 지정과 조합설립 등 초기절차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밟느냐가 사업속도를 좌우한 셈이다.
신탁방식 장점과 한계가 뚜렷하지만 대규모 정비사업을 중심으로 신탁사를 활용하는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 겸 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은 "신탁방식은 사업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래리스크를 줄이고 전문가 도움을 받으려는 선택"이라며 "조합원간 갈등을 줄이고 자금집행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규모 정비사업을 중심으로 신탁방식을 선호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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