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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33> 서역북로 '쿠차'의 고대 유적을 찾아서


당나라 시대 '구자국'(현재 쿠차)은 우리나라 고대 역사와 관련이 많은 지역이다. 신라 승려 혜초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에 구자국(현재 쿠차)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혜초스님은 727년 11월 "카슈가르(당시 소륵국)에서 한 달을 걸어가면 구자국(현재 쿠차)에 이른다. 안서도호부가 있고 군대가 많다. 사찰과 승려가 많다. 소승 불법과 대승 불법이 행해진다. 고기, 파, 부추를 먹는다. 중국 승려는 대승불교를 믿는다"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혜초는 20살의 청년 나이에 724년 중국 광저우를 출발 배편으로 천축으로 갔다. 올 때는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서역북로를 통해서 당나라로 귀국했다. 귀국길에 쿠차(구자국)에서 한참 머물렀다.

신라 후기 대학자 '최치원'(857~908)은 당나라에서 과거시험(빈공과)에 합격하고 관리를 했다. 최치원이 귀국 후 쓴 '향약잡영'(현재 없어짐)에 오늘날 민속놀이인 '북청사자놀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수만 리를 걸어오느냐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구나." 서역에서 들어온 놀이극을 보고 신라에서 쓴 것이다. '북청사자놀이'의 원산지가 당나라 시대 구자국(현재 쿠차)이다.

2000년 전 한나라 시대 만든 봉화대. [사진=윤영선]
2000년 전 한나라 시대 만든 봉화대. [사진=윤영선]

아프리카에 사는 '사자'를 신라인들은 본 적도 없는데, '사자놀이'를 서역에서 가져와서 민속으로 즐긴 것이다. 이국적인 사자놀이가 당시 굉장히 큰 충격이었을지 상상된다. 최치원은 서역에서 오현, 피리, 횡적 등 악기가 신라와 고구려에 전해졌다고 적고 있다. 1200년 전 실크로드의 동쪽 끝 신라와 서역의 쿠차와 문화 교류를 알려주는 기록이다.

구자국(쿠차)의 춤, 음악, 악극, 서커스 공연은 당나라 '양귀비'가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장안에 구자국 출신 악극단, 무용수, 서커스 단원 등이 많이 와 있었다고 한다. 타클라마칸 사막 중간지역에 있는 구자국은 당시 가장 강력한 오아시스 국가였다. 당나라는 이곳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하여 군대를 주둔시켰다.

쿠차는 안서도호부 절도사인 고구려 포로의 후손인 '고선지' 장군의 활동무대이기도 하다. 7, 8세기 국제국가 당나라는 능력이 있으면 외국인도 고위직으로 출세가 가능하던 시대이다. 고구려 포로의 후손인 고선지( ~755년)도 군사령관으로 승진하였다. 고선지 장군이 쿠차에서 8세기 중반 군대를 이끌고 험하고 험한 파미르고원과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서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부 연안보, 길기트 등을 점령하고 서역 30여국이 조공을 바치도록 했다. 천산산맥을 넘어가서 석국(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을 점령하였다.

타슈켄트는 당시 '석(石)국인데 석국 왕이 조공을 안 바친다고 험난한 천산산맥을 넘어 왕을 잡아 장안으로 압송했다. 강대국의 횡포이다. 많은 공로로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군사령관인 '안서절도사'로 승진하였다. 당 현종 때 '안녹산의 난' 진압부대 부사령관으로 전투 중에 모략으로 젊은 나이에 처형당한 비운의 풍운아이다.

근세 유럽의 군사 전략가들이 고선지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험난한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연운보, 길기트 등 요새를 점령한 사실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기원전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 프랑스의 나폴레옹 장군이 '알프스산맥'을 넘어서 이탈리아를 침공한 것보다 고선지 장군이 '파미르고원'을 넘어간 것이 훨씬 어려운 전쟁의 업적이다. 라고 극찬해서 근세에 재평가된 인물이다.

오늘은 오아시스 도시 '어커스'에서 숙박할 예정이다. 가는 중간에 쿠차시 외곽에 있는 2천 년 전 한나라 시대 만든 '봉화대', 간다라 문화 양식으로 유명한 '키질 석굴'을 방문할 것이다. 오늘은 '어커수'까지 약 330킬로 짧은 거리를 이동하므로 시간이 여유롭다. 아침 식사 후 쿠차 변두리 사막에 위치한 한나라가 2천 년 전 만든 '봉화대'를 보러 간다.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은 우리 일행뿐이다. 매표소에서 약간 떨어진 봉화대까지 메마른 사막길을 걸어가야 한다.

'봉화대'는 가로 4.5미터, 세로 3.5미터, 높이 12미터 크기인데, 지금은 많은 부분이 무너져서 당초 크기의 1/3 규모라고 하는데도 규모가 매우 크다. 경주의 첨성대보다 훨씬 크다. 봉화대 주변은 깊은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적군 침입의 감시와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다. 한나라 시대 만든 봉화대를 수백 년 후 당나라가 고쳐서 사용했다고 하는데, 사막의 건조한 날씨에 오랫동안 잘 보존된 것이다.

봉화대 경비병은 멀리서 침략군대가 나타나면 인근의 사령부에 연기로 신호를 보낸다. 봉화대 입구의 기념관에 당시에 봉홧불 연료로 사용하던 '갈대 다발' 묶음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설명서를 읽어 보니 '봉화 연기가 멀리서 잘 보이도록 '야생 늑대'의 똥을 섞어서 불을 붙였다.'는 설명이 재미있다. 늑대 똥이 타는 냄새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늑대 똥 연기가 색깔이 진해서 멀리서 잘 보이는 모양이다.

2000년 전 한나라 시대 만든 봉화대. [사진=윤영선]
쿠차시 뒷골목 위구르족 마을. [사진=윤영선]

초소병들이 야생 늑대 똥을 구하러 사막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상상된다. 과거 전쟁의 명령 전달 수단은 북과 깃발이다. 기념관 입구에 커다란 북과 북채가 있어서 북을 힘껏 쳐봤다. 저음의 울림소리가 사막으로 종소리처럼 퍼져나간다. 적과 마주한 사병들은 지휘부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듣고 공격도 하고 후퇴도 하였을 것이다.

우리의 여행경로를 중국인 감독관 류선생이 감시하고 있다. 류선생은 위구르족 지역을 못 가게 제지하는데, 우리는 쿠차시 뒷골목을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위구르족들이 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시내 중심부 한족이 사는 고층아파트와 확연히 구별되는 가난함이 느껴지는 달동네이다. 위구르족이 사는 허름한 마을 뒷골목은 이슬람교 모스크가 있다.

일거리가 없는 몇몇 사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현대 중국의 한족과 소수 종족간 경제적 격차를 목격한 것도 여행 중 마주한 중국의 현실이다. 쿠차에서 서쪽 사막으로 70여 킬로를 가면 작은 절벽의 계곡에 '키질석굴'이 있다. '키질석굴'이 있는 계곡은 작은 실개천이 흐르는 오아시스 마을이다. 실크로드 상인들이 쿠차로 가기 전에 하룻밤 묶었다가는 지역이다. 아마 혜초스님도 이곳을 거쳐서 쿠차로 갔을 것이다. 11시경 매표소에 도착하니 사막의 날씨가 무척 덥다. 사막 한복판에 키질석굴에 찾아온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다.

키질석굴은 서기 3세기부터 9세기까지 600년에 걸쳐 조성되었고, 260여 석굴이 절벽에 있다. 인도양식, 간다라 양식의 벽화와 불상이 많이 남아서 유명한데, 서구 약탈자들이 중요한 유적은 대부분 뜯어갔다. 이곳은 서기 3세기 석굴을 만들기 시작했으므로 불교가 동방으로 포교하면서 만들었던 초창기 석굴 양식이다. 석굴 규모는 중국 왕실이나 귀족의 후원이 적어서 조촐하고 소규모이다.

3세기 키질석굴, 4세기 중반 돈황석굴, 5세기 천수의 맥적동 석굴, 8세기 신라 석굴암 등 불교 석굴이 매우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키질석굴은 간다라 지방의 그리스풍 조각 양식이 많이 남아서 불상 예술사의 중요한 유적이라고 평가해서 커다란 기대를 갖고 갔는데, 완전 실망이다. 석굴의 벽화는 거의 안 남았고, 부처상도 거의 없는 텅 빈 동굴과 다름없다. 일부 남아 있는 불상도 얼굴과 눈이 크게 파괴되어 잘 보존된 돈황석굴과는 비교할 수 없다.

대부분 유적은 20세기 초기 독일의 탐험대가 약탈해 갔다. 2차세계대전중 미국 공군의 베를린 폭격으로 당시 '베를린 향토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키질석굴의 인류유적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다고 한다. 유홍준 교수가 이곳에 유적을 보러 왔다가 키질석굴의 불교 유적은 못 보고, 입구에 줄지어 늘어선 울창한 '백양나무' 가로수만 보고 왔다는 말이 생각난다.

2000년 전 한나라 시대 만든 봉화대. [사진=윤영선]
키질석굴과 구마라집 동상. [사진=윤영선]

'키질석굴' 정면에 유명한 번역승 '구마라집' 동상이 있다. 서기 344년에 탄생한 구마라집의 탄생 1950주년 기념으로 1994년 설치한 동상이다. '구마라집'은 쿠차에서 태어난 귀족 출신 승려로 중국 불교 역사의 중요한 인물이다. 구마라집의 아버지는 인도의 왕자이고, 어머니는 구자국(쿠차)의 공주인 왕족 집안 사람인데, 어려서 불교 승려로 출가하였다.

산스크리스트어(고대 인도말), 간다라어, 쿠차어, 소그드어, 한어 등을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천재이다. 4세기, 5세기는 중국은 한나라가 망하고 이민족들이 370년 동안 지배하던 "5호16국" 시대이다. 장안에 있던 '전진 왕 부견'이 구마라집의 명성과 소문을 듣고 군대를 쿠차로 파병하여 구마라집을 납치해 왔다. 왕은 구마라집을 강제로 결혼시켜서 도망을 못 가도록 협박을 하기도 했다.

구마라집은 중국에서 불경의 번역에 평생을 바쳤다. 우리에게 익숙한 법화경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색은 공이고, 공은 색이다)은 구마라집이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실재(색)와 비실재(공)"의 불경의 깊은 뜻을 중국어로 의역한 유명한 문장이다. 매우 어려운 용어라서 이해가 쉽지 아니하지만 자주 사용하는 유명한 불경 구절이다.

구마라집 이전에 인도어(산스크리스트어)와 중국어 두 개 언어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 부처가 설법한 깊은 뜻이 중국어로 번역이 잘 안되었다. 초창기 불경의 의미를 중국인들은 도교식 용어로 해석하였다. 노자의 도덕경에 자주 나오는 '무(無), 허(虛), 적(寂)' 등 무위(無爲) 개념을 가지고 번역하였다. 산스크리스트어로 기록한 부처의 설법 내용이 정확하게 번역이 안 되었는데 구마라집의 중국어 번역으로 크게 도움이 되었다. 중국 불교 역사에 2대 번역승은 구마라집과 200년 후의 당나라 현장이다.

2000년 전 한나라 시대 만든 봉화대. [사진=윤영선]
유홍준 교수가 칭찬한 키질 석굴 입구 백양나무 가로수. [사진=윤영선]

두 사람, 구마라집과 현장스님은 인도어와 중국어 두 개 언어에 능통한 승려이다. 중국, 한국, 일본의 불교는 위대한 두 번역승 덕택에 불교가 꽃피우게 된다. 전진 왕 '부견'은 불교 포교자로서 우리 역사책에 나오는 인물이다. 부견은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에게 승려(순도)를 보내서 불교를 소개한 왕이다.

고구려는 선진 문명인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율령을 만들어 율령국가 체제로 변경한다. 소수림왕의 다음 왕은 '광개토대왕'으로 고구려 전성기를 만든 왕이다. 구마라집은 초기는 '소승불교'를 공부하다가 중간에 '대승불교'로 전향한 승려이다. '대승(大乘)'불교는 큰 수레(대승(大乘))에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는 종파이다. 해탈을 이룬 부처가 열반하지 아니하고, 현세에 남아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진화된 불교 사상이다.

서기 0세기 전후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발생하여 실크로드를 따라서 중국과 한국으로 전파되었다.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현세의 행복을 기원하는 아미타 보살('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 극락(極樂) 정토(淨土)에 간다), 미륵보살(미래 생에 복을 가져오는 미래불)이 우리가 잘 아는 보살 이름이다.

늦게 탄생한 미래불 '미륵보살'은 현실의 고되고 힘든 민중을 선동하여 민란을 일으키는 이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과거 중국의 한국의 민란 지도자가 '미륵보살' 사칭을 많이 하여 미륵불은 왕실의 박해 대상이었다. 시대와 민중의 요구에 따라서 대승불교도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뜻밖에도 키질석굴 10호 굴에 '한학련'이라는 연변 출신 조선족 기념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흥미가 있어 한학련 기념전 사진을 찍고자 하니 깡마른 여자 직원이 사진 촬영을 못 하게 한다.

'한학련'은 1946년, 1947년 키질석굴의 조사와 발굴, 키질석굴 벽화를 모사하여 키질석굴 보존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왜 이 멀리 타클라마칸 사막 깊숙이 있는 키질석굴에 연변출신 조선족 사람이 매혹당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한학련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깊은 곳에 고대 신라, 고구려의 흔적이 있고, 근세 인물 '한학련'까지 우리 역사와 실크로드가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배운다.

2000년 전 한나라 시대 만든 봉화대. [사진=윤영선]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법무법인 광장 고문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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