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플랫폼 경제의 확산과 함께 배달 서비스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배달 노동은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됐다.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라이더들은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의 상징이지만, 그 이면에는 안전과 권리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최근 국내외에서 배달 노동자의 산업재해, 교통사고, 심지어 사망 사고가 연이어 보도되며 배달 플랫폼 기업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배달 업무의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현 상황에서 기업의 책임과 사회적 기대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배달 플랫폼 기업들은 그동안 배달 노동자의 사고나 안전에 대해서는 다소 소극적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 주요국의 규제 변화와 사회적 논의는 배달 플랫폼 기업들의 책임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다.
![조준오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ESG센터). [사진=법무법인 화우]](https://image.inews24.com/v1/6f4eaee36be3fc.jpg)
호주에서는 일부 주(뉴사우스웨일스)를 중심으로 배달 플랫폼이 라이더에게 가시성이 높은 보호장비(PPE) 제공, 안전교육, 위험평가, 그리고 작업환경 개선 등 실질적 안전조치를 취할 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상당한 벌금이 부과된다.
싱가포르 역시 2025년부터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단체교섭권, 근로계약서 내 안전 관련 조항 의무화 등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법(Platform Workers Act)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AI 알고리즘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배달 플랫폼의 핵심은 주문 배정, 동선 최적화, 배달료 산정, 인센티브 지급 등 모든 과정이 AI에 의해 자동화된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 알고리즘이 효율성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라이더를 무리한 속도 경쟁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배달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배달 건수를 늘리기 위해 라이더에게 촉박한 시간 내 배달을 유도하고 평점이나 수익 감소, 계정 정지 등 불이익을 통해 위험한 운전이나 휴식 미이행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의 관련 통계를 보면 1년 미만의 초보 라이더가 사고 비중이 가장 높았고, 배달 플랫폼은 신규 인력 모집에는 적극적이지만 안전교육은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이제는 AI 알고리즘의 설계와 운영 방식 자체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ESG)과 직결되는 시대다. 유럽연합은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해 투명성, 안전성, 비차별성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글로벌 플랫폼은 위험 구간 회피, 날씨·교통상황 반영, 실시간 피로도 감지, 적정 휴식시간 자동 배정 등 안전 중심의 알고리즘 개선을 도입하고 있다. AI 기반 안전관리 시스템은 사고 위험 예측, 실시간 경로 모니터링, 개인별 맞춤형 안전교육 제공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딜리버루(Deliveroo)는 ‘Rider Dome’이라고 하는 AI 기반의 배달원 보조 시스템을 통해 도로상의 위험이 감지되면 라이더에게 음성으로 경고를 안내하여 사고를 예방하고, 프랑스의 볼트(Bolt)는 라이더의 연속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기능을 도입했다. 이러한 사례는 AI가 단순히 효율성을 넘어, 실질적 안전 확보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안전운임제, 유상운송보험 의무화, 안전교육 강화 등 제도적 논의가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배달 플랫폼 기업의 책임은 모호하고,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많다.
배달 노동자의 사고를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산업재해로 적극 인식하고, 배달 플랫폼 기업이 노사 공동 위험성 평가,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등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조준오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ESG센터). [사진=법무법인 화우]](https://image.inews24.com/v1/df8cb3e5257563.jpg)
ESG 관점에서 보면, 배달 노동자의 안전 문제는 단순한 비용 부담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업의 신뢰도와 브랜드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안전한 플랫폼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은 우수한 노동자 확보, 고객 충성도 향상 그리고 규제 리스크 감소로 이어져 기업가치 상승에 이바지할 수 있다.
AI와 ESG가 결합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에서, 기업들은 기술의 혁신성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실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AI 알고리즘의 안전성 점검, 데이터 기반 리스크 분석, 외부 전문가와의 협력, 이해관계자와 소통 강화 등 전략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배달 플랫폼 기업은 미국 세일즈포스(Salesforce)가 AI 윤리 검증을 위해 외부 자문위원회를 운영하는 사례 등을 참고해 독립적 ‘알고리즘 안전성 위원회’를 설치해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배달 플랫폼 기업의 책임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AI 알고리즘의 개선과 투명한 안전관리 체계 구축 등을 통해 배달 노동자와 사회 모두가 안전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준오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ESG센터) jojo@hwaw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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